■ 동성애를 막아내는 ‘하나님의 방패’가 되다 : 길원평 교수 인터뷰

삶 의미 찾으려 하루 5시간 성경 읽다 ‘영의 눈’ 떠...강의·지하철서 복음 전하며 살아
10개월 100개 기도 응답 받아...우연히 본 신문기사가 차별금지법 막는 인생 살게 해
차별금지법 당론 못 정하도록 지역 유지들 설득...“학생인권조례 폐지서명 동참도 필요”
“단식하며 100% 에너지 쏟아...“차금법 반대 사역 통해 하나님 더 경험하는 것이 꿈”
“제가 열심히 하는 것 보면서 다음세대가 배우죠...하나님은 제 존재의 가치·의미·목적”

지난 9일 광화문 자유일보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 중인 길원평 교수. 그는 "믿음을 잘 유지하다가 기쁨으로 죽음 통과해 천국에 가는 저의 꿈"이라고 말했다. /김석구 기자
지난 9일 광화문 자유일보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 중인 길원평 교수. 그는 "믿음을 잘 유지하다가 기쁨으로 죽음 통과해 천국에 가는 저의 꿈"이라고 말했다. /김석구 기자

“젊은 날 유물론자의 삶을 살았기에, 죽음 이후에 영원한 삶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저에게 큰 기쁨과 힘이 됩니다. 이 믿음 흔들리지 않고 잘 유지하다가 기쁨으로 죽음을 통과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사역을 제가 좋아하는 이유는, 인간의 힘으로는 하기 어려운 사역이기에 이 사역을 통해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9일 광화문 자유일보 사무실에서 만난 길원평 교수는 ‘하나님이 주신 꿈’이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지난해 정년퇴임을 한 대학교수 치고는 하나님 앞에서 참 순수하고도 열정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 교수는 “저에게 중요한 것은 사역이 아니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라며 “제가 세상의 유혹과 미혹을 이기고, 제 믿음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 저의 가장 중요한 사역”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대한민국에서 ‘길원평’이라는 이름은 곧 ‘동성애’,‘차별금지법’과 대치되는 고유명사와 같다.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와 한동대 첨단융합학과 석좌교수를 지낸 석학인 그는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동반연) 대표, 진정한평등을바라며나쁜차별금지법을반대하는전국연합(진평연) 집행위원장 등의 직책을 맡으며 동성애의 문제점을 알리고 차별금지법 입법을 막아내는 일에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최전방 일선에서 활약해 왔다.

최근엔 더불어민주당의 차별금지법 입법 강행 움직임을 막아내기 위해 국회 앞에서 무기한 텐트 농성까지 벌이며 이 일에 인생을 바치고 있다. 젊은 시절 자살까지 생각했던 무신론자였던 그를 하나님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바꾼 것일까. 자유일보가 직접 물었다.

◇삶 의미 찾으려 하루 5시간 성경 읽다 ‘영의 눈’ 떠...강의·지하철서 복음 전해

-언제 처음 예수님을 믿게 되셨나요.

“1985년 여름방학 중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하루 5시간씩 성경을 읽다가 영의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보이는 세계 밖에 없다고 생각하다가, 영의 세계가 있음을 믿게 되었죠.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지만, 위에서 일인용 소파에서 잠자는 제 모습을 내려다보았는데, 잠이 깬 후 성경을 읽다가 단번에 영혼의 존재를 믿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영혼의 존재를 믿게 된 길원평 교수. /곽성규 기자
성경을 읽다가 영혼의 존재를 믿게 된 길원평 교수. /곽성규 기자

그러다 1986년 한국에 교수가 되어 돌아온 후 다시 죄를 짓게 되었어요. 당시 우리나라에 만연된 뇌물, 탈세, 거짓증서, 통관할 때 절차라든지 등등 이런것에서 제가 교수일하면서 분명하게 행동하지 못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늘 하던 잘못된 방식을 따라간거죠. 결국 고난을 통해 몸이 아프게 됐고 8개월 후 간이 안 좋아졌습니다. 제나이 만 31살이었어요. B형간염에서 간암 수술까지 했구요. 여러 고난을 겪은 후 제가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게 됐어요.”

-대학강의시 첫 수업시간에 항상 복음을 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1986년에 교수가 되어서 간증을 하니까 많은 학생이 박수치면서 좋아했습니다. 한번은 학생이 제 간증에 감동받았다는 내용의 편지를 저에게 준 적도 있습니다. 아마도 믿는 학생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나중에는 학생들이 제 간증을 듣기 싫어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말했습니다. 제 자신이 유물론이 빠져서 젊은 날을 살았기에, 저처럼 방황하는 학생이 있을 것 같아서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말했습니다. 제 말이 언젠가 학생의 마음에서 생각날 것이라고 봤어요.”

-직접 녹음한 간증 테이프를 지하철에서 나눠주기도 하셨다구요.

“당시 제 건강이 좋지 않아서, 학교, 교회, 집, 세 군데만 다녔기 때문에 따로 전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학교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하기에 그때 전도해야겠다고 생각했던거죠. 수업 시간에 스피커 용도로 카세트 라디오를 사용해서 말했는데, 그때 카세트에 간증을 녹음했습니다. 건강(간)이 좋지 않아서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기에, 누워있으면서 수업 시간에 녹음한 간증 테이프를 여러 공테이프에 복사했어요. 

이렇게 복사한 테이프를 20~30개 만들어 지하철에서 나누어 주곤 했습니다. 지하철 중간에 서서 자신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나누어 주었으며, 그러한 용기가 생긴 이유는 건강이 좋지 않아서 일찍 죽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기 전에 전도해야겠다는 마음에, 절박한 마음으로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전도 했어요.”

◇10개월간 100개 기도 응답 받아...우연히 본 기사가 차별금지법 막는 인생 살게 해

-부산대 교수가 되시기 전 10개월 간 모든 기도가 응답되신 이야기 좀 해 주십시오.

“크고 작은 기도들을 100개 정도 응답받았는데, 그 당시 저는 공부하고, 먹고 잠자는 것밖에 하지 않았기에, 처음에는 자동차 주차 자리를 달라는 사소한 내용의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한 기도를 계속 응답받으니까, 조금씩 믿음이 자랐습니다. 

기도 응답을 통해 조금씩 믿음이 자라게 됐다는 길원평 교수. /김석구 기자
기도 응답을 통해 조금씩 믿음이 자라게 됐다는 길원평 교수. /김석구 기자

제일 큰 기도 제목은 박사 학위를 받는 것과 직장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영어로 논문을 적어야 하고, 마지막에는 영어로 미국 교수들 앞에서 발표해야 합니다. 그때 교수들이 질문하면 영어로 그 자리에서 답변해야 합니다. 사실 이 관문이 어려운데, 발표 준비하면서 예상 질문을 적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영어로 미리 적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당일 교수들의 질문이 모두 내가 예상했던 질문들이었던 거에요.

다른 기도는 직장을 구하는 것이었는데 당시 유학생들 사이에 한국에서 교수가 되려면 빽이 있든지 돈을 줘야 한다는 풍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저는 절대로 돈을 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편지를 써서 부모님께도 그런 일은 하지 마시라고 했습니다. 그때 부산대에서 공채가 있어서 응모한 상태였어요. 아무튼 순적하게 결국 부산대 교수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러한 제 기도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 같습니다. 제가 그 당시 공의로운 사람이어서 그런 기도를 한 것이 아니고 정말 하나님이 정말 계신지를 모든 일을 통해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 제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교수가 순적하게 되게 해 주셨습니다.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정말 계신지 여부를 아는 것이 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서 기도했는데, 결국 교수까지 된 거에요.”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음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저는 원래 동성애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지난 2006년 한 일간지 1면 메인 기사에 ‘차별금지법 제정’이란 타이틀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차별금지법을 좋은 법으로 인식했었어요. 그해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부에 차별금지법을 입법 권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사를 읽는데 ‘성적지향’이란 용어가 있어서 인권위 홈페이지로 가서 법안을 보니까 성적지향 개념이 동성애를 포함하고 있더라구요. 그때부터 주위 약 250명 교수의 서명을 받아 청와대와 법무부 등에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해결된 줄 알고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2007년 10월에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을 입법 예고했는데 성적지향이 여전히 포함되어 있더라구요. 

차별금지법의 '성적지향' 내용을 파악해 250명 교수의 서명을 받아 청와대와 법무부 등에 보냈다는 길원평 교수. /김석구 기자
차별금지법의 '성적지향' 내용을 파악해 250명 교수의 서명을 받아 청와대와 법무부 등에 보냈다는 길원평 교수. /김석구 기자

그래서 다시 전국의 교수에게 이메일 등으로 알렸습니다. 많은 분이 입법 예고에 반대 의견을 내는 것에 동참해 법무부가 쉽게 차별금지법안에서 성적지향을 삭제하고 국회로 발의했습니다. 그 이후엔 동성애 단체에서도 성적지향이 삭제된 법안을 반대해 결국 국회 임기 말로 차별금지법안이 폐기되었어요.”

-250명의 서명을 받으실 정도로 원래 활달한 외향적인 성격이셨었나요.

“원래 성격은 내성적이에요. 하지만 집중력이 있고 뭐든 하면 열심히 합니다. 동성애 문제 전에도 황우석 박사일이 터져서 배아복제에 반대하는 과학자 모임의 회장도 맡아서 했었구요. 그 전으로 올라가면 포르노 영화관에 반대하는 서명도 받았었어요. 그래서 동성애 문제때는 사실 서명받는 것에는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천 교수들 모임 네트워크가 전국적으로 있고 해서 이메일을 보낸 뒤 답변이 오면 모으기만 하면 됐어요.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차금법 당론 못 정하도록 지역 유지들 설득...“학생인권조례 폐지서명 동참도 중요”

-민주당의 차별금지법 입법 강행 움직임이 다시 본격화되고 있는데 현재 어떤 전략으로 대응 중이신가요.

“우선은 민주당이 차별금지법을 당론으로 정하지 않도록 각 지역 유지들이 민주당 국회의원들을 면담해서 반대하도록 부탁하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실패했기에, 앞으로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강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강행한다면, 민주당이 스스로 파멸의 길로 들어간다고 봅니다. 얼마 전에 광주 금남로에서 있었던 차별금지법 반대 집회에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몇 만 명이 모였습니다. 

2년 후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기에 민주당 의원들이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을거라고 봅니다. 물론 일부 강경파 의원들도 있지만 대다수 민주당 의원들은 합리적인 마음으로 차별금지법을 강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도 강행할 조짐이 있으면, 대규모 집회를 다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에 여론조사를 했는데, 처음에 ‘차별금지법을 압니까 모릅니까?’라고 묻고, 그다음에 ‘당신은 이 법에 찬성합니까? 반대합니까?’라고 물어봤습니다. 차별금지법을 안다고 답한 사람의 약 70%가 법 제정에 반대합니다. 반면 차별금지법을 잘 모른다고 답한 분들은 찬성이 반대보다 더 많습니다. 

저희가 중간에 몇 가지 질문을 더 넣어서 조사를 또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자기가 여자라고 생각하는 남자가 여자 화장실 들어가는 걸 어떻게 생각하느냐?’, ‘자기가 여자라고 생각하는 남자가 여자 스포츠 경기에 출전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을 물었습니다. 그러한 질문을 한 후, 마지막에 다시 차별금지법에 대한 찬반을 물으니까, 차별금지법을 잘 모른다고 답했던 사람도 역시 60~70%가 반대했습니다. 

길 교수는 "몇 가지 질문만으로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고 돌아선 사람이 확 늘어난다"고 말했다. /김석구 기자
길 교수는 "몇 가지 질문만으로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고 돌아선 사람이 확 늘어난다"고 말했다. /김석구 기자

그러니까 그 몇 가지 질문만으로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고 돌아선 사람이 확 늘어납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국민의 약 4분의 1 정도만 차별금지법을 압니다. 4분의 3이 모르니까 찬성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차별금지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면 대다수 국민은 입법에 반대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단지 배부 등을 통해 일반 국민에게 차별금지법의 실체를 알리는 운동을 전개하며 국회 앞에서는 계속 일인시위 등을 할 것입니다.”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과도도 소통 중인가요. 

“국민의힘에 차별금지법을 막기 위해 열심히 일하시는 의원들이 꽤 있습니다. 민주당이 밀어붙이니까 국힘쪽은 당연히 반대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이채익 의원, 성일종 의원, 조해진 의원 등이 열심히 해주고 계세요.”

-민주당에도 김회재 의원처럼 크리스천 의원들도 있는 걸로 아는데요.

“김회재 의원은 믿음이 원래 좋은 분으로 알고 있어요. 옛날에 신앙생활 하신거 보니까 남다르신 분이더라구요. 제일 중요한게 민주당에서 당론이 안되게 하려고 의원총회에서 발언을 해야 하는데요, 민주당의 크리스천 의원들 중 의원총회에서 반대하는 발언을 하도록 지역구 목사님을 통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앞으로 지도부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달려습니다. 당 대표가 누구인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현재 국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우선은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서명을 적극적으로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차별금지법이랑 똑같은 것입니다. 이 조례가 실행되면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동성애와 에이즈 관련 발언을 하면 조사를 받게 됩니다. 저쪽 진영은 이런 식으로 꼭 다음세대를 공격합니다. 우리가 정말 조심해야 될 게 다음세대를 놓치면 이 전쟁에서 지고 맙니다. 다음세대를 위해 국민들이 함께 노력해야 해요. 

그래도 다행인 건 현재 서울시 의회의 70%가 국민의힘 의원들이기 때문에 조례를 바꿀 수 있게 됐다는 겁니다. 우리가 서명을 모아서 법적인 요건에 맞춰서 제출하면 의회에서 알아서 해 줄 수 있습니다. 이건 교육감과 상관이 없거든요. 

길 교수는 이날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서명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줄 것도 요청했다. /곽성규 기자
길 교수는 이날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서명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줄 것도 요청했다. /곽성규 기자

그런데 현재 동참을 너무 안 해요. 우리가 1월부터 시작해서 문자를 계속 보냈는데 안 하더라구요. 국민들이 이걸 열심히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서명하기만 하면 없앨 수 있는 것입니다.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이 조례가 만들어진지 10년이 넘었어요. 작은 교회도 상관없습니다. 다 모으면 됩니다. 서울시민이면 누구나 동참할 수 있습니다.”

◇“단식하며 100% 에너지 쏟아...“차금법 반대 사역 통해 하나님 더 만나는 것이 꿈”

-체력적으로 마음적으로 지치지는 않으시나요.

“4월에 3일 정도 단식을 했습니다. 만 3일을 한 뒤 그만두고 다시 대통령 취임식때 텐트 걷고 끝나고 금식을 다시 시작할 때는 ‘혼자해서는 안되겠다’ 싶어 첫날은 내가 하고, 돌아가면서 릴레이로 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인터넷에 신청하면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상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몸에 무리는 잘 안 하려고 하고 있어요. 하지만 일단 저에게 주어진 힘 안에서 거의 100%에너지를 여기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스트레스는 별로 안 받아요. 공격도 별로 없습니다. 물론 고민은 하겠지만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려고 할 때 아슬아슬한 위기 상황에서 항상 하나님이 이기게 해 주셨어요. 요즘 잠은 5시간~6시간 텐트에서 자구요, 보통은 7~8시간 정도 잡니다. 그리고 작년에 부산대 교수직을 정년퇴임했고, 한동대 석좌교수는 신기하게 올해 수업이 배정이 안되서 이 일에만 체력적으로 집중할 수가 있었어요.”

-교수님의 남은 인생에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으시다면 무엇인가요.

“차별금지법을 막는게 쉬운 일은 아닌데,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거의 다 통과됐고 한국만 남아 있어요. 한국에서는 보수언론도 조용히 있고 현재 우리편이 없습니다. 이렇게 상황적으로는 어려운데, 하나님이 신비롭게 막아주시고 계십니다. 2006년도에 하나님이 우연히 일간지 기사를 보게 하셔서 지금까지 막아주셨어요. 그걸 15년을 계속 막아오니까, 정말 하나님이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계속 하나님의 능력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구요. 그런데 제 목표는 이 사역이 아니라 이 믿음을 가지고 죽음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게 목표입니다. 그래서 사실 상황이 어려울수록 더 좋은 거죠.”

길 교수는 "목표는 사역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죽음을 통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석구 기자
길 교수는 "목표는 사역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죽음을 통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석구 기자

-경건생활이 밑바팅이 되실 것 같습니다. 

“요즘에도 매일 일어나자마자 큐티는 꼭 해요. 성경읽고 기도하면서 은혜도 많이 받고 하나님 살아계심을 묵상합니다. 그러다 보면 아침에 일어날 때 그 전날에 고민하던게 ‘이렇게 해야 되겠다’하고 떠오를 때도 있어요. 그대로 하면 되더라구요.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신비롭게 잘 풀립니다.

사실 이 사역도 의도적으로 제가 시작하지 않았지만 의외로 점점 커지면서 30~40대 거의 누워서 생활했고, 겨우 수업만 하던, 조용히 생명만 유지하고 있던 저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신비롭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너무 신기하고 기쁨이 있는 사역입니다. 제가 50살때 나도 일좀 하게 간절하게 기도했는데 그때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이 일을 주신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했는데 제 몸을 일으키셔서 사용하셨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몸이 더 건강해졌고 바이러스가 없어졌어요.(웃음)

워낙 젊었을 때 유물론자였기 때문에 나를 바로 사용할 수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걸 씻어내는데 30대 때부터 20년이 걸린 것 같습니다. 그때 깨끗하게 정리가 돼서 나온 것 같아요.”

◇“제가 열심히 하는 것 보면서 다음세대가 배워...하나님은 제 존재의 의미와 목적”

-동성애·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을 지속할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현재 저희와 뜻을 함께하는 단체인 동반교연, 전국교수연합 등에 교수들만 3000명 가량 됩니다. 하지만 직접 일을 하는 사람은 손에 꼽히죠. 그 안에는 다양한 전공의 교수님들이 계시고 젊은 분들도 계세요. 제가 열심히 하는 걸 보면서 그분들이 배우는 것 같습니다. ‘전국청년연합’, ‘바로서다’ 등 단체들의 청년들도 있어요. 저희가 인재를 키운다기 보다는 먼저 열심히 하다보면 그 친구들에게 도전이 되는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본을 보여주면 나머지 청년들이 따라옵니다. 좋은 본을 보여주는게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수님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하나님은 제 존재의 가치이며 의미이며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온 땅을 지금도 다스리신다는 사실 자체가 저의 큰 기쁨이며 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물론자였던 저를 찾아와 주시고, 믿음을 갖게 하시고, 지금도 믿음을 유지하도록 은혜와 감동을 지속적으로 주고 계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저를 창세 전에 선택하시고 사랑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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