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5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한국 문화가 제법 나에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귀국한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나를 위한 나’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본에 돌아가면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귀국 전에는 숨도 막히고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일본에는 ‘메이와쿠(迷惑)’라는 말이 있다. 한국에도 ‘민폐’라는 비슷한 말이 있다. 나는 오랫동안 이 두 단어가 같은 뜻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에게 메이와쿠를 끼치지 말라는 말을 듣고 자란다. 그런데 사람이 살다 보면 민폐를 끼치기도 하고 당하기도 하며 사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나는 메이와쿠 끼치지 말라는 말에 거부감이 느껴졌다. 남을 위한 삶을 살라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 역시 아이를 키울 때 ‘메이와쿠를 끼치지 말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키우고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본 한국 친구들은 ‘네가 아이를 잡는 것 같다’, ‘어떻게 어린 아이에게 남을 생각하라고 가르치냐’고 자주 말했다. 친구들의 지적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나 역시 남을 위해 사는 것을 싫어했으니 아이 입장에서 육아를 해보려고 나름 많은 노력을 했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매우 따뜻했다. 길을 가는 사람들이 아이에게 말을 걸어 주고 버스에서 아이가 울면 달래주는 아주머니가 꼭 있었다. 나는 귀국하고 어떻게 메이와쿠를 끼치지 못하게 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지 불안하고 막막했다.

귀국하고 바쁜 일상을 보내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만원 전철을 타고 출근을 했다. 일본 여름의 덥고 습한 날씨, 게다가 비까지 쏟아지는 날의 불쾌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런데 문득 깨달았다. 내 바지가 남의 우산 때문에 젖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또한 그렇게 사람이 많은 전철을 매일 타는데도 발이 밟힌 적도 한 번도 없었으며, 나를 제치고 먼저 승하차하는 사람도 없었다.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사소한 불편함이 확실히 적었다.

일본 유치원에서 비 오는 날에 전철을 타면 우산을 접어서 남에게 물을 튀기면 안 된다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다만 일본 사회에 뿌리 내리고 있는 ‘남에게 메이와쿠를 끼치지 말라’는 개념이, ‘남을 위한 것’, ‘모두를 위한 것’, ‘사회와 국가를 위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그것이 돌고 돌아서 ‘나를 위한 것’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내가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배려하는 것, 그때 그 누군가의 대상은 나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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