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10일 발표한 국제수지 잠정통계에 따르면 4월 경상수지는 8000만달러(약 1500억원) 적자로 집계됐다. /연합
한국은행이 10일 발표한 국제수지 잠정통계에 따르면 4월 경상수지는 8000만달러(약 1500억원) 적자로 집계됐다. /연합

한국 경제가 재정수지와 경상수지 모두 적자를 기록하는 ‘쌍둥이 적자’ 우려에 휩싸이고 있다. 흑자기조를 이어가던 경상수지가 24개월 만에 적자로 돌아서 재정수지와 함께 적자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불거진 것이다. 우리나라가 마지막으로 쌍둥이 적자를 겪은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발생했던 1997년이다.

쌍둥이 적자는 1980년대부터 미국이 만성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로 경제 활력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기축통화국이 아닌 데다 수출로 먹고 사는 소규모 개방경제를 갖고 있어 극도로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재정수지는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적자기조가 굳어진 상황이다.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 정책이 남발됐기 때문이다. 실제 재정의 건전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통합재정수지는 지난 2019년 적자로 돌아선 이후 올해까지 4년 연속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올해 1분기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33조1000억원이다.

통합재정수지에서 4대 보장성 기금을 차감해 정부의 실질적인 살림살이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1분기에만 45조5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연간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70조4000억원,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10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각각 전망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 오던 경상수지마저 흔들리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10일 발표한 국제수지 잠정통계에 따르면 4월 경상수지는 8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국제수지는 크게 경상수지와 자본수지로 나뉜다. 다른 나라와 상품 및 서비스를 사고 파는 거래의 결과를 경상수지라고 하고, 상품이나 서비스 없이 돈만 거래하고 그 차이를 계산하는 것이 자본수지다. 경상수지는 다시 상품수지·서비스수지·본원소득수지·이전소득수지로 분류되는데, 수출 위주의 우리나라 경제에서 상품수지는 경상수지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지난 4월 상품수지는 29억5000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지만 1년 전보다 20억 달러 줄어들었다. 해외 근로자 임금, 외국인 투자자 배당, 이자 등 투자소득의 차이를 나타내는 본원소득수지는 32억5000만 달러 적자를 냈다.

김영환 한국은행 금융통계부장은 "상품 수출은 견조한 흐름이지만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수입이 급증하면서 상품수지 흑자폭이 크게 줄었다"며 "여기에 외국인 투자자 배당 지급 확대 등 계절적 요인이 더해져 경상수지가 적자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본원소득수지는 국내 기업의 연말 결산 배당금 지급이 집중되는 4월에 적자로 돌아서는 계절성이 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경상수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상품수지의 흑자가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 불안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 상품수지와 연동되는 무역수지도 4월부터 5월까지 2개월 연속 적자다.

무역수지와 상품수지는 서비스나 자본거래 등을 제외한 상품에 국한해 수출과 수입의 차이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다만 관세청이 집계하는 무역수지는 통관을 기준으로 하고, 상품수지는 운임과 보험료를 뺀 순수 상품의 가격으로만 집계한다. 올해 무역수지는 1월 적자를 보였다가 2월과 3월 흑자로 돌아섰다. 하지만 4월부터 다시 적자로 전환돼 5월 17억10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지면 대외지급 결제 능력이 줄어들고, 재정수지 적자는 대내외 경기 충격이 발생했을 때 이를 방어할 수 있는 여력을 감소시킨다. 특히 경상수지 적자는 원화 약세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원화가치가 하락하면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압력도 가중된다.

외환위기 때도 경상수지 적자의 급증으로 대외지급 결제마저 불가능해지면서 IMF에 ‘경제 주권’을 넘겨준 치욕을 겪었다. 그나마 국가부도 직전에서 회생한 결정적 배경은 국가채무 비율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11.4%에 불과했던 건전재정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재정마저 경고등이 들어온 상태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 초 임기 마지막 추경을 편성하면서 국가채무 1000조원, 국가채무 비율 50%를 넘겼다.

4월 경상수지 적자는 계절성, 즉 일시적인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외환위기의 트라우마가 우려를 확대·재생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