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
이재구

지난달 말 발표된 세계 슈퍼컴 톱 500 순위에서 미국의 1엑사플롭(초당 100경 회 계산)급 ‘프런티어’가 세계 1위에 올랐다. 그러나 빛이 바랬다. 사실 중국이 지난해 세계 최초로 동급 슈퍼컴을 독자 개발해 운용중이다. 굳이 인증 경쟁에 나서지 않은 것은 미국의 강력한 기술 제재를 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중국이 세계에 기술력을 각인시킨 것은 2010년 ‘톈허 1-A’로 세계 슈퍼컴 정상에 오르면서다. 놀랍게도 할리우드 영화 ‘마션’(2015)에서 미국은 화성에 남겨진 맷 데이먼을 구해 올 우주 로켓 제공자가 중국밖에 없다고 말한다. 세계 1위 슈퍼컴 개발 기술력을 인정했기에 나올 수 있는 설정이다. 실제로 슈퍼컴은 빅데이터·인공지능·로켓·군사·우주·핵 등의 기술력 확보에 필수이자 국가 경쟁력의 척도다.

4년 전 과기정통부는 올해 1페타플롭급 슈퍼컴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감감 무소식이다. 나왔더라도 그 성능이 현 세계 1위 슈퍼컴의 1000분의 1에 불과하다. 작년 5월엔 2030년까지 국산 CPU로 1엑사급 슈퍼컴을 만들어 세계 5위에 오르겠다고 했다. 문제는 이미 그 슈퍼컴이 등장했기에 8년 후 그걸로 세계 5위는 턱도 없다는 데 있다. 이대로라면 돈 써가며 경쟁력 뒤지는 기술을 확보하게 된다. 최근 국가슈퍼컴센터 운용자인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내년에 슈퍼컴 6호기를 ‘구축’해 세계 10위권에 진입하겠다고 말했다. 좋은 슈퍼컴을 ‘사와서’ 높은 순위에 오른들 더 이상 자랑거리는 못된다.

때마침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에 힘을 싣고 있다. 반도체 전문가 장관도 왔다. 이 정도라면 우리 손으로 세계 수준의 칩과 슈퍼컴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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