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주필 동행 취재] 송해 선생, 영면에 들던날...

엄용수 코미디언협회장 "무작정 일어나세요" 조사에 흐느낌 터져
몸집은 작지만 마음은 바다...한없이 겸손·소탈했던 영원한 '딴따라'

경북 달성군 옥포송해기념관 벽 대형걸개그림의 송해 선생.
경북 달성군 옥포송해기념관 벽 대형걸개그림의 송해 선생.

2017년 6월 9일, 송해 선생과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이 자리를 함께 했다. 후미진 종로 골목통 한식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였다. 9순의 선생과 소주잔을 부딪히며 우리는 자주 어울렸다. 청하면 선생은 늘 마다하는 법 없이 흘러간 트롯을 구성지게 뽑으셨다. 사흘 전, 페북이 5년 전 그날 동영상을 내게 불러냈다.

조준희는 초 대박이 난 ‘송해 광고’를 만든 장본인이다. "송해 선생님을 모델로 쓰면 좋지 않겠냐?" 하자 반대가 심했다. 광고회사 다니던 딸 역시 고개를 가로 저었다. 며칠 동안 간절하게 고심을 거듭한 끝에 결심했다. ‘기은에 예금하면 기업을 살립니다…’ 문안까지 직접 만들었다. 빅히트,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고인은 그런 조준희를 좋아했다.

10일 송해 선생을 보내는 영결식. "딩동댕~ 소리와 ‘저~언국’ 하는 송해 선생님 육성이 나오면 일제히 ‘노래자랑’을 외쳐주세요!" 사회를 맡은 김학래가 말했다. 먼저 방송코미디언협회장 엄영수가 조사(弔辭)를 했다. "남들은 정년을 하는 61세, 전국노래자랑 MC를 맡으셔서··· 34년간 매주, 1700여회, 출연자만 3만여명, 누적 관객수 1000만 명이 넘은 최장수 인기프로 MC이셨습니다." 엄 회장은 ‘무작정’을 화두로 이어갔다. "선생님은 6·25때 무작정 가출해 무작정 38선을 넘으셨고, 무작정 상경해 무작정 악극단에 들어간 무작정 인생이었습니다." 그의 목이 메였다. "많은 후배 코미디언들의 아버지 같고 형님 같은 선생님이 벌써 그리우니 이번에도 무작정, 무작정 일어나십시요!" 

송해기념관 2층 전시실의 '영원한 오빠' 송해 선생 모습.

선생은 스스로를 딴따라라 낮췄다. 길가의 나팔꽃같이 떠도는 인생이라 했다. 낮추니 오히려 하늘의 별처럼 높아졌다. 위대한 딴따라로 동료연예인들의 위상까지 높였다. "선생님은 언제 어디서든 출연자를 높이면서 신명나는 축제판을 연출해낸 최고의 예술연출가이자 마술사였습니다." 조사가 절정에 이르자 흐느낌이 새나왔다. "2000원 짜리 이발을 하시고, 원로연예인들과 2000원 짜리 국밥을 드시며 전국의 노인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으신 95세 청춘이신데··· 벌써 가시다니요!" 목메인 절규로 흐느낌은 더 커졌다. "하늘나라에서, 시계도 시간도 없는 천국에서 편안하게 쉬십시오."

이어 코디미언 이용식이 선생과의 인연 실타래를 풀었다. "47년 전 코미디언이 되게 이끄신 선생님은 은인이자 스승··· 늘 먼저 조문을 가셔서 먼저 간 후배의 영정을 어루만지며 ‘못된 놈, 나이도 어리면서 먼저 가고···" 그의 목소리도 떨렸다. "많은 별이 떠있는 천국에서 편히 쉬십시오. 먼저 간 구봉서 이주일 선배님 만나시면 우리 후배들 잘 있다 안부도 전해주세요. 많은 별들 앞에서 천국노래자랑 사회도 보시고요···" 다시 흐느낌이 이곳저곳에서 터져나왔다.

대한가수협회장 이자연의 조사가 이어졌다. "지난 주 맛있는 것 드시러 가자 했더니··· 다음주에 보자던 말씀이 쟁쟁한데, 지금이 그때인데···" 목소리가 물기로 촉촉했다. "70년 간 스승으로, 아버지요 형이자 오빠로, 코미디언 가수 MC 영화배우로 늘 거듭나시고, 출연한 수많은 가수들을 스타로 탄생시키고···"

마지막 순서. 생전의 육성 테이프가 돌아갔다. "제 고향은 황해도 재령··· 1924년 4월 27일 태어나···(어떤 아이였나?) 장난꾸러기였지요··· 그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노래하는 걸 좋아했고, 딴따라 한다고 부친께 불호령에 야단도 맞고···"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몇년 전 245m의 ‘송해 길’이 생겼다. 사별한 부인 옥석이 여사의 고향인 대구 달성군 옥포송해공원에는 기념관도 세워졌다. 여성 가수들이 송해의 ‘나팔꽃 인생’을 불렀다. "···바람에 구름가듯 /떠돈 세월이 몇해 /구수한 사투리에 /나팔꽃같은 내 인생··· " 노래가 끝나자 방송인 이상벽·전유성·임하룡·최양락·유재석·강호동·이수근이 꽃을 바쳤다. 강호동·유재석 등은 선생이 누워 계신 관을 운반했다.

옥포송해기념관 묘소입구의 추모 플래카드와 추모하러 나온 달성 지역주민들.
옥포송해기념관 묘소입구의 추모 플래카드와 추모하러 나온 달성 지역주민들.

낙원동 흐름한 건물 4층에 선생이 자비로 마련한 원로연예인상록회 사무실. 그 앞에서 노제를 했다. 선생의 흉상과 시비가 서있는 ‘송해 길’ 끝자락. 거기서 나도 소주 한잔 올렸다. 여의도 KBS 사옥 벽의 대형걸개그림 속 송해 선생이 추모객들에게 미소짓고 계셨다. 전국노래자랑 악단이 연주하는 올드랭사인의 구슬픈 음률이 다시 눈의 물기를 훔치게 했다

고인을 실은 리무진은 김천 화장장으로 향했다. 거기서, 왔던 곳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쳤다. 송해공원 부근 동산 묘소에 먼저 간 부인과 합장해 고인은 영면에 들었다. 지척에 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도 고인의 묘소에 들러 참배하고 송해 기념관까지 둘러봤다. 고인은 육영수 여사와 친분이 깊고, 육여사 사후 퍼스트레이디를 대행한 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 역시 깊었다.

몸집은 작지만 마음은 큰 바다, 34년 간 일요일마다 국민들을 울리고 웃긴 국민MC였다. 늘 낮은 곳으로 임한, 위대하지만 한없이 겸손하고 소탈했던 딴따라! 그 서민 풍모의 인간 냄새가 향기로왔다. 소주 두어병은 게눈 감추듯 하시더니···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100수를 넘겨 필생의 소원인, 북한땅 고향 재령에서도 전국노래자랑을 하셨을 텐데··· 하늘나라 천국(天國)노래자랑의 큰 사회 보시며, 큰 별로 자유대한민국의 융성과 조국의 통일을 지켜보시길. 송해 선생님! 사랑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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