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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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씨가 저한테 먼저 사과를 해야 돼요." 6월 10일, 기자들 앞에 선 유시민은 무척이나 당당했다. 그 자리는 그가 피고인으로 법정에 출석하는 길이었다. 유시민은 2019년 12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검찰, 그중에서도 한동훈 당시 검사장이 자신과 노무현재단의 계좌를 불법으로 추적했다고 말했다. 한동훈은 사실무근이라 했지만, 유시민은 그 뒤에도 그 말을 반복했다. 그때는 조국사태로 인해 좌파 진영이 검찰에 반감을 품었을 때였으니, 좌파의 대표 스피커인 유시민이 검찰을 악마화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한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문제는 계좌추적을 하면 금융기관에서 6개월 내, 아무리 길어도 1년 이내에 당사자에게 통보를 해준다는 것, 그렇다면 유시민은 최소한 2020년 12월쯤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내보여야 했다. 유시민은 그러지 못했다. 대신 그는 "제기한 의혹을 입증하지 못했고, 그 의혹은 사실이 아니었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어떤 형태의 책임 추궁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자신의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판단한 한동훈은 2021년 3월, 5억원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한 시민단체는 이보다 앞선 2020년 8월, 허위사실로 한동훈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유시민을 형사고발했다. 이번에 유시민이 법정에 간 건, 그날이 형사고발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1심 선고는 겨우 벌금 500만 원이었다. 판사에 따르면 유시민의 행위가 죄질이 좋지 않아 엄하게 처벌을 내릴 필요가 있지만, 한동훈이 법무장관이 됨으로써 명예가 회복된 게 형량을 낮게 준 이유란다. 유시민이 장관을 시켜준 것도 아닌데 무슨 소리인가 싶지만, 이 판결이 한동훈이 제기한 민사소송에 영향을 미칠 테니, 나름의 의미는 있다. 하지만 선처에도 불구하고 유시민은 ‘자신은 무죄를 주장하니 항소해서 다투겠다’고 말한다. 사과문에 적힌 ‘어떤 형태의 책임 추궁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그저 재판을 유리하게 끌어보려는, 마음에 없는 소리였던 모양이다.

조국·김경수·한명숙 등등 판결에 승복하는 좌파는 지금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이건 그러려니 하자. 문제는 그가 한 다음 말이다. "제가 유죄가 나왔다고 해서 한동훈 씨가 검사로서 상 받을 일 한 것은 아니에요." 이 무슨 황당한 소리일까? 추측컨대 저 말은 유시민이 한동훈에게 가진 라이벌 의식의 발로, 그러니까 이번 유죄판결로 자신이 패배하자 약이 바짝 올라서 나온 말로 보인다. 진짜 라이벌로 생각할까 싶어 유시민에 관해 한동훈이 채널A 기자에게 했던 말을 여기에 옮긴다. "관심 없어. 그 사람 밑천 드러난 지 오래됐잖아."

"60살이 넘으면 뇌가 썩는다." 과거 유시민이 한 말이다. 1959년생인 유시민은 2019년 만 60이 됐다. 그 해 유시민은 정경심이 자산관리인을 시켜 동양대 컴퓨터를 빼돌리는 걸 ‘증거보존’이라고 함으로써 자기 앞날을 예언한, ‘유스트라다무스’가 됐다. 63살이 된 올해, 주제도 모르고 한동훈을 건드렸다 망신당하는 유시민을 보며, 사람들은 또다시 ‘유스트라다무스’를 연호한다.

하지만 지금의 유시민이 단지 60이 넘어서, 뇌세포가 다 죽었기 때문에 이런 헛소리를 하는 건 아니다. 그의 뇌세포가 한창이던 1985년, 스물여섯의 유시민은 1심 판결에 불복한다는 내용의 ‘항소이유서’를 썼다. 당시 그는 서울대 안에 있던 무고한 민간인을 가두고 구타한, 소위 서울대 프락치 사건의 주모자로 1심에서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받은 터였다. 항소이유서 앞부분에서 유시민은 항소의 목적이 무죄를 주장하거나 형량을 깎기 위함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라고 했지만, 이어지는 글의 내용은 그와 반대였다.

그는 자신의 행위를 ‘부정한 시대’와 나쁜 정부 탓으로 돌리며, 이게 다 자기가 조국을 사랑하기 위해서 벌인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37년 전의 유시민은 잘못했다고 사과해놓고 무죄라고 우기는 지금의 유시민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저 유시민들은, 어용지식인을 자처하며 문재인과 이재명을 옹호하는 유시민과 정확히 일치하며, ‘증거보존’을 외치는 유시민과도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말한다. 유시민은 나이가 들어서 뇌가 썩은 게 아니다. 그의 뇌는, 원래부터 상해 있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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