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기
홍성기

19세기 유럽의 산업혁명은 경제뿐 아니라 정치·문화·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거대한 변화를 일으켰다. 지난 20세기는 19세기 산업혁명이 일으킨 변화 혹은 그 반작용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처음 만든 ‘대중사회’라는 표현은 지난 200년의 거대한 변화를 압축하고 있다. 즉 이전에는 왕이나 귀족들이 전유하던 정치·경제·문화 및 예술의 영역 모두에서 대중이 실질적인 힘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중은 이런 영역에서 지배적인 위치로 부상했지만, 동시에 항상 조작의 대상이기도 했다. 정치의 경우 대중은 자신들의 대표자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동시에 그들은 정치적 선동의 대상이다. 대중에 의한 생산과 소비는 경제의 원천이지만, 광고와 포퓰리즘의 대상으로서 투기와 낭비의 주체이기도 하다. 예술의 영역에서도 대중은 고급문화를 동경하면서도 동시에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대중적 감수성으로 대중예술가 내지는 우상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1929년 스페인의 철학자인 오르테가 이 가제트(Jose Ortega y Gasset)는 일간지에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대중’에 대해 날카로우면서도 냉소적인 글을 연재하였다. 이 글을 모은 것이 <대중의 반역>이라는 책이다. 이때 대중은 신분이나 계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평균인’을 의미하며, 문제는 대중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이들이 사회를 지배하려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의 지배력은 이제 사실이고 또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격동의 20세기를 보내고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요동치는 한국사회의 중심에는 오래 전부터 대중이 있어 왔다. 이제 모두가 대중인 사회에서 대중 스스로 대중을 볼 때가 아닐까.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