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기 대비 8.6% 급등하며 시장 전망치를 웃돌자 글로벌 금융시장은 또다시 긴축 공포에 휩싸였다. /연합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기 대비 8.6% 급등하며 시장 전망치를 웃돌자 글로벌 금융시장은 또다시 긴축 공포에 휩싸였다. /연합

글로벌 금융시장이 ‘패닉 셀링’의 공포에 휩싸였다. 아시아와 유럽 주요국 증시는 13일(현지시간) 일제히 2∼3% 하락했으며, 미국 뉴욕증시의 나스닥지수는 5% 가까이 폭락했다.

공포의 원천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다. 5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기 대비 8.6% 올라 1981년 12월 이후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인플레이션이 고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걸을 것이라는 ‘물가 정점론’이 힘을 잃은 것이다.

지난달만 해도 2분기 중에는 물가가 정점을 통과할 것이라는 게 시장의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9월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인상을 멈출 것이란 전망도 여기에서 나왔다. 특히 6월, 7월, 9월에 각각 0.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인상해 ‘중립금리’로 여겨지는 2.50%에 안착하면 금리 인상 기조가 얼추 마무리될 것이란 시나리오는 주요국 증시의 반등 랠리를 이끌기도 했다. 중립금리는 경제가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 압력이 없는 잠재성장률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금리 수준을 말한다.

하지만 이 같은 ‘희망 섞인 전망’은 5월 소비자물가지수로 뿌리부터 흔들리게 됐다. 현재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로는 인플레이션을 막을 수 없으며, 시장에 좀 더 충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수면 위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도 5월 소비자물가지수 발표 이후 미 연준의 자이언트스텝, 즉 기준금리가 한꺼번에 0.75%포인트씩 뛸 가능성에 무게를 싣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물가를 낮추려면 공급을 늘리거나 수요를 줄여야 한다. 현재는 코로나19의 여진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공급을 갑자기 늘릴 수 없는 만큼 통화정책을 통해 수요를 줄일 수밖에 없다. 특히 지금까지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로는 수요를 효과적으로 억누르는 것이 어렵다는 게 입증된 만큼 매파적 주장에 힘이 실릴 공산이 커졌다.

이 같은 비관적 상황으로 인해 지난주 금요일 미국 금융시장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이 여파는 주말을 넘어 글로벌 금융시장을 ‘검은 월요일’로 몰아넣었다. 국내 금융시장의 경우 증시는 물론 채권과 환율 모두에서 트리플 약세가 나타났다. 공포심리가 극도로 높아져 금융자산을 무조건 매도하고 보자는 패닉 셀링이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일시적일 것인지, 아니면 추세적일 것인지는 15~16일 열리는 미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 달렸다. 만약 이번 FOMC 정례회의에서 한꺼번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이 단행되면 금융시장은 다시 한 번 몸살을 앓을 수 있다.

최근의 물가 오름세를 감안하면 미 연준의 긴축 강화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물가 상승 압력이 여전히 높은 데다 지난 5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린 빅스텝의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준금리의 인상폭과 시기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난무하는 등 오리무중(五里霧中)인 상태다.

미국 투자은행 웰스파고는 소비자물가가 연말까지 고공행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했다. 또 다른 투자은행 바클레이스는 물가가 정점을 찍었다는 징후가 없기 때문에 미 연준이 이번 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미 연준이 6월 FOMC 정례회의에서 자이언트스텝 대신 빅스텝을 택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더욱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은 7월 FOMC 정례회의에서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반면 CNN비즈니스는 미 연준이 양적긴축에 나선 점을 고려하면 7월 FOMC 정례회의에서도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미 연준은 이달 1일부터 만기가 도래한 채권의 원금을 재투자하지 않는 방식으로 보유 채권의 양을 줄이고 있다. 이는 장기금리를 인상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미 연준이 굳이 자이언트스텝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미 연준이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물가를 잡기 위한 미 연준의 자이언트스텝이 현실화되면 글로벌 금융시장은 또다시 패닉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