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파괴적 소수에 휘둘리는 나라
[시론] 파괴적 소수에 휘둘리는 나라
  • 최성재 교육문화평론가
  • 승인 2018.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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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은 창조적 개인 또는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ies)에 의해 발전하지만, 파괴적 개인이나 파괴적 소수(creative minorities)에 의해 퇴보하기도 한다.]

◇창조적 개인, 인류의 스승

예수,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 [출처:백과사진첩]
예수,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 [출처:백과사진첩]

인류(Homo sapiens)는 지난 3천 년 동안 눈부시게 성장하여, 이제 키가 화성에까지 닿았다. 이런 화려한 외면세계와는 달리, 내면세계는 영 그렇지 못하여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그간 수천, 수만의 문명이 있었지만, 그새 통합되고 융합되어 이제는 스무 개 정도 아니, 열 개 정도의 문명권으로 서로가 서로를 나날이 닮아 가고 있다. 지나친 일반화이긴 하지만, 크게 자유진영과 독재진영 이 둘로 나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몇몇 창조적 개인(creative individuals) 덕분이다. 그들이 바로 차라투스트라,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 마호메트이다. 시대적으로 제일 앞선 성인(聖人 sage)이었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오래 전에 희미해졌고 그 자리는 마호메트가 대신하고 있다.

물질세계는 전쟁의 파괴나 평화의 부패로 후퇴하는 수가 있어도 이내 추스르고 계속 성장했지만, 정신세계는 그렇지 못했는데, 이때 정신적 해와 달과 별로 어둠 속에서 정처 없이 헤매는 인류를 이끌어 주신 분들이 바로 위에 언급한 스승, 열 손가락으로 헤아리기에도 넘치는 인류의 스승이다.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분법에 따라, 흔히 사람들은 ‘평화는 무조건 좋고 전쟁은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인류의 스승들은 하나같이 한 문명의 해체기(interregnum)에, 전쟁이 일상사였던 암울한 시대에 태어났다. 거기서, 그들은 인간의 가장 추악한 부분이 난무하는 한가운데에서 인간의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또 다른 부분을 꿰뚫어보고 인류에게 찬란한 희망의 별을 당신들의 말과 행동으로 직접 들려주고 보여 주었다.

◇전쟁은 무조건 나쁘고 평화는 무조건 좋다고?

영국 BBC방송이 새롭게 드라마화한 ‘전쟁과 평화’. 사진=영상캡쳐
영국 BBC방송이 새롭게 드라마화한 ‘전쟁과 평화’. 사진=영상캡쳐

이븐 할둔(Ibn Khaldun 1332~1406)은 한 왕조는 120년 정도가 일반적이고,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한 왕조의 성립은 전쟁의 시기가 끝나고 평화의 시기가 왔다는 것인데, 창조적 소수가 아름다운 새 세상을 열었다는 것인데, 대체로 3대째가 되면 창조적 소수에서 파괴적 소수(*)로 전락한 기득권의 독재와 부정부패로 피비린내와 구린내와 썩내(썩는 냄새)가 천지에 진동하고, 그사이 창조적 다수(creative majorities)로 성장한 절대다수가 평화가 가져다주는 풍요와 자유의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도리어 억압 받고 핍박 받고 두 눈 멀쩡히 뜬 채 재산이 박탈당하고 고문당하고 살해당하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파괴적 소수’는 2007년에 필자가 만든 용어임.)

내가 여기서 근년에 유독 주목하는 것이 파괴적 개인 또는 파괴적 소수의 역할이다. 이들은 외적의 침략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만약 민심을 얻은 제대로 된 왕조 초기라면 감기처럼 면역력을 키워주는 순기능을 담당한다. 썩기 시작하는 또는 썩을 대로 썩은 왕조 말기라면, 내부의 창조적 개인 또는 창조적 소수가 일어나 서서히 민심을 사로잡아 아름다운 새 세상을 열든지, 외적의 침입으로 그것이 뒤엎어지고 왕왕 새 문명으로 대체될 수 있다.

20세기 들어,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하고 자유민주와 시장경제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인류는 일찍이 없었던 일로 다수가, 소수가 아닌 다수가, 인류의 스승들이 한 목소리로 갈파하고 제시한 대로, 자유와 풍요를 골고루 누리게 되었다. 그게 양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에 본격화되었다. 여기 예외가 있으니, 공산권이다.

◇파괴적 개인과 파괴적 소수가 만든 전쟁보다 끔찍한 평화

『자본』의 저자 카를 마르크스.
『자본』의 저자 카를 마르크스.

파괴적 개인(destructive individuals) 중에 가장 악명을 널리 떨친 자가 마르크스다. 그는 아예 인간의 정신세계를 부정하고 물질적 부(富 wealth)를 유일신으로 섬겼고(유물론) 자본재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가진 자들에 대해 폭력 행사하는 것을, 다짜고짜 사람을 때려죽이는 것을 ‘유토피아의 정의’라고 보고 적극 장려했다.

그의 충실한 추종자가 레닌, 스탈린, 모택동(毛澤東 마오쩌뚱), 폴 포트, 김일성 등의 파괴적 개인이었다. (이들과 대척점에 있지만 히틀러도 파괴적 개인의 대표선수!) 이들은 평화를 전쟁보다 끔찍한 세상으로 만든 장본인들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두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말 그대로 수억 명이, 저항 한 번 못해 보고, 속수무책으로 아무 죄 없이 맞고 갇히고 강제 노동당하고 파리나 모기처럼 덧없이 죽었다. 평화시대였으니까! 개인에게는 더 이상 총칼이 없었으니까!

누구에 의해서? 이들 파괴적 개인들의 충실한 개들에 의해서! 파괴적 소수, 공산당에 의해서!

◇한국의 파괴적 소수가 무너뜨린 공권력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온갖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이들의 충실한 하수인들 곧 파괴적 소수가 한국에서, 가장 희망이 없던 나라에서, 식민지배와 공산침략으로 가장 비참하던 나라에서 일약 가장 희망이 넘치는 나라로 변신한 한국에서 1980년대 이후로 금강석 신념과 강철 조직으로 공권력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최단 시일에 세계 최고 수준의 치안을 확보한 공권력을, 200년에서 300년에 걸쳐 피와 땀으로 일군 자유민주주의를 자랑하는 그 어떤 국가에도 뒤떨어지지 않은 치안을 확보한 참 아름답던 공권력을, 밤거리를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만든 대한민국의 참 아름답던 공권력을, 이들이 야금야금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민주의 이름으로! 통일의 이름으로!

이들 파괴적 소수자에게 공권력은, 경찰과 군대는 독재의 하수인이나 부유층의 호위무사로밖에 안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정권을 잡지 못했을 때는 공권력에 무조건 저항하고 대들고 불 지르고 돌과 화염병 던지는 것이 정의로 포장되었고,

그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그들의 지극히 추상적인 평등과 분배 이론, 한국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이론, 중남미나 아프리카에나 적용될 평등과 분배 이론, 곧 종속이론 내지 교조적 사회주의 이념을 내세운 그들의 불법·폭력 집회에 대해,

한국의 공권력은 반세기 동안 지은 죄를 속죄하는 의미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막지 말아야 한다고 확신하고 예사로 공권력을 상대로 폭력을 휘둘렀다. 좌파 정권의 명시적·묵시적 비호를 받아!

그 결과 경찰은 아무리 맞고 죽어도 괜찮지만, 대(大)를 위한 소(小)의 희생에 지나지 않지만, 막상 자신들은 불법·폭력 집회에서 작은 생치기 하나 나더라도 거세게 반발하여 정당한 공무집행을 도리어 인권유린으로 고소·고발하여 공권력을 더욱 약화시켰다. 이들 파괴적 소수는 한국의 실정법 자체를 모조리 정의에 어긋나는 악법으로 보고, 자신들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폭력을 정당화했다.

이들을 이론으로 비호하는 자들이, 또 다른 파괴적 소수가 야금야금 학계와 문화계를 장악했고, 기소와 판결로 이들을 정당화해 주는 검사와 판사 나리들이, 또 다른 파괴적 소수가 법조계를 야금야금 장악했다.

◇한국의 파괴적 소수는 왕조시대의 왕족을 능가하는 특권층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현황 (사진='남북의 창' 캡처)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현황 (사진='남북의 창' 캡처)

이 파괴적 소수는 대략 한국에서 10% 정도 차지하는데, 그들이 양대 노총 그중에서도 민노총, 민중 사학자, 민중 예술인, 좌파 시민단체, 민변,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민노총 소속 언론노조, 좌파계열 정당, 기회주의 우파다.

이들은 하나같이 북한의 파괴적 소수에게는 호의적이되, 민족과 평화란 명분으로 3대 세습 정권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면죄부를 남발하되, 그 아래 신음하는 절대다수의 민중은, 노동자·농민은, 공산주의 이념에도 도무지 맞지 않는 공산세습왕조의 사실상 노예는 철저히 무시한다.

전 세계가 규탄하는 ‘현재진행형 아우슈비츠’ 북한인권은 깡그리 무시하고, 노골적으로 북한인권 운동을 방해하고 천신만고 끝에 노예 상태에서 벗어난 탈북자도 민족 반역자로 보아, 아예 대놓고 사갈시하고 밤길 조심하라고 수시로 협박한다.

이제 대한민국의 파괴적 소수는 법 위에 군림하는 특권층으로, 공권력 위에 군림하는 특권층으로 권력과 부와 명예를 독과점하고 있다. 특권도 이런 특권이 없다. 왕조시대의 왕족도 못 누린 특권의 특권이다. 이들의 눈에 벗어나면, 벌떼 공격으로 누구든 묵사발을 만들어 버린다. 파렴치범으로 만들어 버린다.

심지어 그들보다 수십 배 많은 경찰이 멀뚱멀뚱 지켜보는 가운데, 언어적 폭력과 물리적 폭력을 한꺼번에 동원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후에 유유히 사라진다. 그럼으로써 작은 이익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그중 하나가 최근의 폭력 사건이다. 민노총의, 민노총에 의한, 민노총을 위한 유성기업 폭력 사건이다.

공공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불법·폭력 집회를 막은 공권력은 불가피한 신체 접촉이나 생명을 위협을 느껴서 무의식중에 휘두른 육모방망이의 정당방어도 모조리 법의 심판대에 올라 감방 가지만, 파괴적 소수의 폭력은 법조계의 파괴적 소수에 의해 모조리 무죄 석방되거나 감형되고 심지어 통 크게 보상까지 받는 수가 있다. 촛불을 들고 순진하게 이들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열렬히 따른 사람들도 이제는 대오각성할 때다.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 자체가 바벨탑처럼 무너질 지경이니까!

그러면 제일 먼저 이들 파괴적 소수의 초특권이 몽땅 사라질 것이다, 무력적화통일 후 월남의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 처절하게 토사구팽당했던 것처럼!

gw2021@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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