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는 드론, 로봇, 바이오·헬스케어, 에너지·신소재, 전기차 등 총 33건의 규제 개선 방안을 확정했다. 한건 한건이 모두 타당하다. 오히려 ‘왜 이제야 개선안을 내놓았나!’ 하는 탄식이 나온다. 사실 규제 개선안은 역대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식상한 메뉴다. 박근혜 정부는 불필요한 규제를 ‘손톱 밑 가시’ ‘암’ 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발에 달린 ‘모래주머니’에 비유했다. 그런데 역대 정부가 획기적인 규제 개선 방안을 내놓았지만, 어느새 새로운 규제들이 생겨나는 일이 반복되어 왔다.

노동신문은 지난 13일 김정은이 북한에서 팔리는 치약 등 생필품의 조악한 품질에 대해 ‘극대노’하면서 선질후량(先質後量) 원칙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인민들의 물질적 복리 증진"을 위해 사소한 것 하나까지 챙기는 수령의 마음 씀씀이에 인민들이 감동 받았으면 하는 의도로 보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생필품들이 자유 경쟁하는 글로벌 시장 속에 사는 우리에게 이런 뉴스는 좀 우습게 들린다. 한국을 보는 외국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작은 정부, 큰 시장, 강한 민간 자율 속에 사는 미국·유럽 기업들은 한국발 규제 개선 뉴스에 어리둥절할 것이다. 정부가 틀어쥐지 말아야 할 것을 질기게 틀어쥐고 있다가 놓아주는 것을 한국에선 ‘규제 개선’이라 하기 때문이다. 또 대통령이 규제를 ‘암’이니 ‘모래주머니’니 하면서 전의(?)를 불태운다.

한국에서 규제개혁이 어려운 것은 시장은 작고, 민간 자율규제 기구는 약하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정치 분야에서 비용-편익, 위험-이익을 잘 타산하여 합리적인 규제를 만들거나 개선하면서, 그에 책임지려는 의식이 부족하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규제 완화를 ‘자본의 이윤추구를 돕는다’고 보았다. 규제는 숫자가 중요하지 않다. 백 개의 작은 규제보다 한 개의 규제가 더 파괴적인 경우가 많다. 정부 시행령만이 아니다. 진짜 규제는 법률이다. 최저임금제와 주 52시간제는 백 개의 규제보다 더 강력한 규제다. 윤 정부는 역대 정부의 규제개혁 실패와 좌절 경험부터 먼저 살펴봐야 한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