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월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노동이사제 시행을 앞두고 노동이사제가 이사회를 노동투쟁의 장으로 변질시키고 새로운 노사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 1월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에 대한 표결이 이뤄지고 있다. /연합
오는 8월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노동이사제 시행을 앞두고 노동이사제가 이사회를 노동투쟁의 장으로 변질시키고 새로운 노사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 1월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에 대한 표결이 이뤄지고 있다. /연합

앞으로 공공기관(공기업·준정부기관)의 이사회에 노조원이 노동이사로 합류해 경영상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심지어 노조위원장도 노동이사 자리를 꿰찰 길이 열린다. 8월 시행되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불러올 경영현장의 변화다. 재계는 이런 노동이사제가 공공기관을 넘어 민간부문에 확대 적용되는 상황을 크게 경계하고 있다. 기업의 최고의결기구인 이사회가 자칫 노동투쟁의 장으로 전락할 수 있는 까닭이다.

1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오는 8월 4일부터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가 정식 도입된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대표가 기업 이사회의 일원으로서 경영에 참여하는 제도다. 지난 10일 기재부가 이를 담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에 따라 이날 이후 비상임이사를 신규 선임하는 공공기관은 의무적으로 노동이사 1명을 뽑아야 한다. 대상기관은 한국전력 등 공기업 36곳과 국민연금공단 같은 준정부기관 94곳을 포함해 총 130곳이다.

노동이사 후보는 과반수 노조가 있는 경우 노조 대표가 추천한다. 노조위원장이 자신을 셀프 추천할 수도 있다. 과반수 노조가 없는 기업은 투표를 거쳐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은 후보자가 추천된다. 임기는 2년이며 1년 단위 연임이 가능하다.

이 같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시행을 한 달 남짓 앞둔 지금까지 재계를 중심으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노동계는 노사간 소통 강화에 따른 갈등 완화, 방만 경영 감시라는 순기능을 주장하지만 경영계는 역기능이 더 크다고 강조한다. 노동이사의 지나친 딴지걸기에 의한 이사회 운영 효율성 저하, 경영 비밀의 노조 유출, 의사결정의 신속성·전문성 저해로 인한 주주이익 침해 등이 그것이다. 노동이사가 새로운 노사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부실 공공기관 개혁과의 엇박자도 예견된다. 경영정상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연봉 동결 등 노조의 고통 분담이 요구될 때 노동이사가 이를 저지하는 첨병 역할을 자임할 개연성이 높은 탓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현행 노동조합법에 따라 노동이사는 노조를 탈퇴해야 하지만 이는 형식적 조치일뿐 노동이사가 회사가 아닌 노조의 이익을 대변할 것은 불문가지"라고 우려를 전했다.

재계가 이처럼 노동이사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것은 노동이사제가 친노조 일변도의 정책을 펼쳤던 문재인 정부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실제 노동이사제는 대선 레이스가 한창이던 올 1월 1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당시 노동계의 표를 의식한 이재명 후보가 신속처리를 당부한 뒤 한달 만의 졸속 입법이었다. 경영환경의 심대한 변화가 초래되는 만큼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는 기업들의 당연한 요구는 표퓰리즘에 밀려 묵살됐다.

현재 재계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은 공공기관을 도화선 삼아 민간부문에도 노동이사제 도입 압력이 거세지는 것이다. 이미 지난 2월 KB금융그룹 노조가 주주총회에 사외이사를 직접 추천하는 등 관련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또한 노동이사를 포함한 경영에 관한 사항은 단체교섭의 논의 대상이 아님에도 강성 노조가 장악한 자동차·철강·금융 등의 업계에선 노동이사제가 단체협약 테이블에 오르내린 지 오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최근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국내 산업계의 피해액이 벌써 1조6000억원을 넘어섰다"며 "국가와 국민을 볼모로 한 후진적 노동쟁의가 만연한 상황에서 노동이사제마저 민간기업에 도입된다면 심각한 경영리스크로 작용해 현 정부가 추구하는 ‘Y노믹스(민간주도 경제성장)’도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재계 입장에서 긍정적인 부분은 윤석열 정부가 노조로 기운 노사관계의 운동장을 바로 잡는 노동개혁에 힘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적어도 현 정부에서 노동이사제의 민간 확대는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경총 관계자는 "노동이사제는 의무화가 아닌 기업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게 재계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공공기관에서 앞으로 나타날 노동이사제의 부작용 사례를 알리는 등 의무적 민간 확대의 부적절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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