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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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한국 속담처럼, 평등의식이 강한 프랑스인들도 남 잘되는 꼴을 못본다. 그래서 프랑스 부자들은 봉변이 무서워 티내지 않고 얌전히 산다. 양국의 이런 기질 때문인지, 루소·몽테스키외·토크빌로 이어지는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공동체에 대한 관념이, 영국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메시지보다 한국인의 심금을 더 크게 울리는 것 같다.

토크빌은 그의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민주적 전제주의 (Democratic Despotism)라는 생소한 개념을 처음 사용했다. 그러자 당시 민주주의의 환상에 젖어 있던 밀 (J. S, Mill)과 같은 영국 지식인들은 민주주의의 타락이 어처구니 없다는 식으로 토크빌을 비난했다.

토크빌은 민주주의의 두 기둥인 자유와 평등이 상호 이율배반적이라고 말한다. 권력과 부가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시대가 가고 모든 인민들이 권력과 부를 자유롭게 추구하는 세상이 왔다.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부여되는 책임을 지는 자유보다 가면 뒤에 숨을 수 있는 평등을 본능적으로 선호한다는 것이다. 질투와 시기심으로 가득찬 인간의 본성은, 제도적·여론적 상황만 맞으면 기꺼이 얼마든지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나약한 개인들은 다수가 형성한 유령 같은 여론에 무작정 도덕적 권위를 부여하고 그 속에 안주한다.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회피한다. 결국 물질주의에 빠진 이기적 개인주의는, 개인과 국가 사이에서 사회적 중간매개 역할을 하는 가족·종교집단·학교·기능별 압력단체 등과 같은 시민사회를 붕괴시킨다. 동시에 권력을 향한 정부의 포퓰리즘은 엄청나게 확산된다. 이런 상황은 결국 그 사회를 모두가 평등한 인민독재로 가게 만든다.

현재 대한민국은 민주적 전제주의, 다시 말해 인민독재를 추종했던 문 정권의 무능과 적폐로 정치경제, 외교안보, 사회교육문화 전면에서 폭풍전야다. 너무도 명백한 국가적 위기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윤 대통령은 시민사회에 자유관념을 회자시키고 문 정권의 적폐를 도려낼 수 있는 정의로운 율사들을 전면배치했다. 참으로 잘한 선택이었다고 보여진다. 그 결과가 몹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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