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정의 길 따라...] 뜻밖의 비경과 짜릿함이 있는 곳, 강원 인제

국내 최대 원대리 속삭이는 자작나무숲 은빛 40여만 그루
구룡덕봉·가칠봉 둘러싸인 아침가리골은 원시 비경 간직
2700만평 방태산 자연휴양림 깊은 숲속 시원한 이단폭포
카레이싱 마니아라면 인제스피디움...일반인도 레이싱 경험

자작나무숲. 자작나무는 순우리말이다. 나무껍질이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다.
자작나무숲. 자작나무는 순우리말이다. 나무껍질이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풍경과 만난다. 대한민국은 그런 곳이다. 길모퉁이를 돌면 깜짝 놀랄 풍경을 보여준다. 산자락은 뜻하지 않은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가 슬그머니 내어놓는다. 강원도 인제는 뜻밖의 선물같은 여행지다.

요정이 살 것 같은 숲

인제는 숲이 많은 곳이다. 전체 면적의 89.3%가 산림으로 이뤄져 있다. 설악산과 내린천 등 천혜의 자연환경을 품은 인제의 브랜드는 ‘하늘 내린 인제’다. 하늘 내린 인제의 숲을 가장 잘 느껴볼 수 있는 곳이 원대리에 있는 속삭이는자작나무숲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자작나무 숲으로 1.38㎢에 자작나무 40여만 그루가 자란다.

자작나무숲에 가려면 발품을 팔아야 한다. 입구에서 탐방로를 따라 1시간은 올라가야 한다. 길은 두 갈래로 나뉘는데, 오른쪽은 윗길(원정임도), 왼쪽은 아랫길(원대임도)이다. 자작나무로 만든 인디언 집이 있는 전망대까지 윗길을 따라가면 약 1시간(3.2km) 정도 걸리고, 아랫길로 가면 1시간 30분(3.8km) 정도 걸린다. 아랫길이 평탄하고 윗길이 가팔라 보통 아랫길로 가서 윗길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한다. 길은 평탄해서 초등학생 이상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다.

이 숲은 원래 소나무 숲이었는데 솔잎혹파리 피해를 받아 벌채하고, 1974~1995년 138ha에 자작나무 약 70만 그루를 심었다.?숲에 들어서면 마치 북유럽에 온 것만 같다. 껍질이 은빛으로 빛나는 높이 20~30m 자작나무가 빼곡하다. 나무 꼭대기에서 요정이 내려올 것만 같다. 힘껏 심호흡을 하면 상쾌한 숲 내음이 밀물처럼 가슴 가득 들어온다. 나무껍질을 쓰다듬으면 매끄러운 질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자작나무는 순우리말이다. 나무껍질이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다. 종이처럼 얇게 벗겨지는 껍질은 천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 일부도 자작나무 껍질로 만들었고 경주 천마총의 말안장을 장식한 천마도의 재료도 자작나무 껍질이다. 초가 없던 시절에는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인제가 선물하는 원시의 비경

아침가리골은 구룡덕봉, 가칠봉 등 1,200~1,400m의 고봉에 첩첩산중 둘러싸인 깊은 골짜기다.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에서 말한, 난을 피하고 화를 면할 수 있는 ‘삼둔 오가리’ 가운데 한 곳이다. 국내의 대표적인 트레킹 코스 가운데 한 곳이다. 코스는 방동약수관광지~방동약수~방동고개~조경동교~아침가리계곡트레킹~진동리마을로 이어지며 코스 길이는 약 11km, 대략 5시간이 걸린다.

방태산계곡. 계곡을 조금만 오르면 귀청을 때리는 물소리가 들린다.
방태산계곡. 계곡을 조금만 오르면 귀청을 때리는 물소리가 들린다.

길은 비좁은 오솔길을 지나고 계곡을 건너간다. 어느 사이 희미하게 사라지더니 결국 없어진다. 그리고는 바위지대가 이어지고 넓은 너럭바위지대가 펼쳐진다. 약 3시간여를 거슬러 오르면 갑자기 계곡이 환하게 열린다. 이즈음이면 아침가리의 비경지는 다 지나온 셈이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난 비포장길을 따라 방동약수 방면으로 갈 수도 있고, 계곡을 계속 따라 거슬러 올라 홍천군 내면 월둔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깊은 숲, 시원한 폭포

아침가리골 트레킹으로 부족하다면 방태산 휴양림으로 가보자. 적가리골에 있는데, 휴양림 입구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다. 방동리로 나와 좌회전해 다리를 건너면 된다. 방태산 휴양림은 면적만 2700만 평에 달한다.

방태산은 깊은 숲을 가지고 있다. 심마니들이 많이 살았다. 느릅나무, 단풍나무, 당단풍, 물박달나무, 갈참나무, 개서어나무, 개옻나무, 들메나무, 떡갈나무, 물박달나무, 부게꽃나무, 음나무 등 50여 종의 나무들이 자란다.

휴양림 입구에 들어서면 일단 계곡에 눈을 뺏긴다. 진녹색 이끼가 낀 바위틈으로 맑은 물이 쏟아진다. 계곡을 조금만 오르면 귀청을 때리는 물소리가 들린다. ‘이폭포 저폭포’라고 부르는 이단폭포다. 폭포 주위에는 숲이 우거졌다. 폭포 옆에 조그마한 정자가 마련돼 있다. 정자에 앉아 물소리를 듣는다. 물소리가 가슴으로 파고든다.

온 가족이 즐기는 짜릿한 액티비티

나 홀로 즐기는 가장 짜릿하고 모험적인 액티비티는 단연 카 레이싱이 아닐까. 강원도 인제에 자리한 인제스피디움은 최고의 스피드를 만끽하는 곳이다. 총연장 3908km 서킷이 일반인에게도 개방돼 짜릿한 레이싱을 경험할 수 있다. ATV레저카트장과 인제스피디움클래식카박물관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서킷이 내려다보이는 4성급 호텔과 콘도가 있어 한여름 가족 여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인제스피디움 정문에서 오르막길을 오르면 정면으로 컨트롤타워와 피트빌딩이 보인다. 피트빌딩 앞에는 화려하게 꾸민 자동차들이 있다. 왼쪽 위로 선수와 관객을 위한 숙박 시설인 호텔과 콘도가 자리한다. 콘도 앞 전망 포인트에서 경기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당시 북한 응원단이 인제스피디움에 묵었는데, 당시 북한 응원단 방문을 기념하는 상설 전시관이 피트빌딩에 있다. 응원단이 남긴 메시지와 그들이 두고 간 담배 등이 흥미롭다.

인제스피디움. 일반인을 비롯한 아마추어 레이서도 서킷 주행이 가능하다.
인제스피디움. 일반인을 비롯한 아마추어 레이서도 서킷 주행이 가능하다.

인제스피디움은 국내외 자동차경주가 열리는 경기장이자, 자동차 마니아라면 한 번쯤 찾고 싶은 레저 시설이다. 경기가 열리지 않는 날에는 일반인을 비롯한 아마추어 레이서도 서킷 주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험이 많은 아마추어 레이서는 서킷에서 보통 시속 200km 이상으로 달린다. 관람석에서 이들이 질주하는 모습을 보면 거대한 엔진 소리에 귀가 먹먹하다. 보는 것만으로 심장이 뛰고 팔뚝에 소름이 돋는다. 이 경험을 시작으로 자동차경주에 빠져드는 이가 많다고 한다. 피트에서 정비 중인 자동차를 구경하는 일도 흥미롭다. 하나같이 시트를 모두 떼어냈는데, 이는 무게를 최소화해 속도를 향상하기 위해서다.

아이들과 함께 인제스피디움을 찾았다면 ATV레저카트가 좋다. 혼자 탈 수 없는 아이를 위해 보호자가 동승하는 전동카트도 있다. 아찔한 코너링과 짜릿한 질주를 경험하며 카트를 몰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다양한 부대시설도 인제스피디움 여행을 더욱 즐겁고 알차게 만든다. 자동차 마니아라면 그랜드스탠드 뒤쪽에 자리한 인제스피디움클래식카박물관을 놓칠 수 없다. ‘네오클래식’을 콘셉트로 꾸민 박물관에는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 〈킹스맨〉 〈로마의 휴일〉 〈나쁜 녀석들〉 등의 장면을 재현한 공간을 배경으로 1950~1990년대 생산된 다양한 클래식 카가 전시된다.

인제 여행은 설악산 끝자락 필례계곡에 있는 필례약수에서 마무리한다. 탄산 약수가 솟아나는 곳으로, 피부병과 위장병에 효과가 탁월하다고 한다. 철분이 많아 한 모금 마시면 비릿한 맛이 입가에 남는다. 조선 시대부터 영동과 영서를 잇는 길목에 있는데, 가을이면 단풍이 붉게 물든다.

[여행정보]

옛날원대막국수.
옛날원대막국수.

자작나무숲 앞에 자리한 옛날원대막국수(033-462-1515)의 막국수가 유명하다. 메밀향이 진하다. 고향집(033-461-7391)은 새벽마다 전통 방식 그대로 두부를 만든다. 들기름을 두른 무쇠 판에 생두부를 올리고 손님이 직접 셀프로 구워 먹는 두부구이 맛이 각별하다. ‘백종원의 3대천왕’에서 콩비지 찌개 맛집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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