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국방부 2년 전 해수부 공무원 北 피격 관련 사과
대통령 안보실, 유족에 관련정보 제공·공개 사과 방침
文정부 남북대화 분위기 위해 ‘北 눈치보기’ 때문 판단
유족측 “문재인 전 대통령 살인방조 혐의로 고소 검토”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 1월 31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서해 피살 공무원 유가족을 면담하고 있다. /국민의힘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 1월 31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서해 피살 공무원 유가족을 면담하고 있다. /국민의힘 제공

윤석열 정부가 16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해 문재인 정부 당시 사건이 부당하게 왜곡됐다는 결론을 내리고 관련 정보를 공개하기로 했다. 고인의 명예 회복을 요구해온 유족은 "진실 규명의 첫 단추가 끼워졌다"며 환영했다.

이 사건은 지난 2020년 9월 어업지도선에 탑승했다가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가 서해상을 표류하던 중 북한군 총격에 사망한 뒤 시신이 불태워진 일이다. 이 사건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이모씨가 ‘도박 빚에 시달리는 등 경제적 곤란을 겪다가 자진 월북한 것’이라며 월북 시도로 단정해 발표했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은 이날 오전 이 사건 관련 정보를 공개하기 어렵다며 1심 패소 판결에 항소했던 결정을 번복하고 유족에게 사실상 사과했다.

안보실은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게 피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족에게 사망 경위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정보를 제한했던 과거의 부당한 조치를 시정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안보실에서는 앞으로도 유족이 바라는 고인의 명예 회복과 국민의 알 권리 실현을 위해 노력해 나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해경은 이날 오후 애초 공개를 거부했던 사건 당시 수사 자료들을 공개했다. 특히 고인의 채무 등을 근거로 월북 시도 중 표류했다고 단정한 데 대해 공식 사과할 예정이다.

이번 결정은 윤석열 대통령이 약속한 바를 지키는 차원이기도 하다. 앞서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였던 지난해 12월 "문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숨기고 싶나. 정부의 무능인가 아니면 북한의 잔혹함인가. 불과 1년 전 대통령이 유가족을 직접 챙기겠다고 했던 약속은 무엇인가"라고 비판하며 "제가 집권하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당시 관련 자료를 공개할 것"이라고 공약한 바 있다.

안철수 전 대통령직인수위원장도 지난달 2일 유족을 만난 뒤 "새 정부가 출범하는 즉시, 정보공개 결정에 대한 청와대의 항소를 철회하도록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출범 후 안보실에 배치된 관계자들은 인수위 단계부터 유족 측과 지속해서 소통하며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을 약속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집권 뒤에는 사건 당시 ‘로데이터’(가공되지 않은 원본 정보)를 내부적으로 분석하며 사실상의 재조사를 진행, 사건이 왜곡됐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남북 대화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북한 눈치를 보며 국민의 인명사고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게 현 대통령실의 인식이다.

일각에서는 전임 정부의 판단을 현 정부가 정면으로 뒤집은 만큼 이번 정보 공개가 ‘신구 권력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번 결정의 핵심은 문재인 정부가 고인의 월북을 단정했던 것을 정정하는 것"이라며 "북한군 감청 자료 등을 근거로 월북을 단정한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로써 당시 사건 보고·지시 라인에 있던 인사들에 대한 사법 처리도 이뤄질 수 있을 전밍이다.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진행해온 고인의 형 이래진 씨는 이날 "진실 규명의 첫 단추가 끼워졌다"며 "거짓 수사로 사건을 은폐했던 해경 수사 책임자들을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국방부, 해수부, 해경 등으로부터 보고받고 지시했던 자료들이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공개되지 못하는 점은 대통령실과 유족이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유족들은 우리 군이 북한군 내부 통신을 감청하면서 현지 상황을 추정하고 있었고 북한군의 총격 전에 고인을 충분히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NLL(북방한계선)을 넘지 않기 위해 방치하고 있었다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당시 청와대가 사건을 고의로 은폐했다는 의혹을 제기해온 이씨는 대통령기록물을 열람하기 위한 고등법원장 영장 발부를 끌어내기 위해 변호사와 법률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안보실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핵심 자료가 대통령기록물로) 묶여 있어 공개할 복안이 없으니 우리도 답답하다"며 "(오늘 발표는) 제한된 여건 속에서 차선을 추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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