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동궁·월지에서 출토된 유물
가로 3.6cm 세로 1.17cm 두께 0.04cm
현대 장인도 제작하지 못 할 수준
문양에 서역 문화가 신라화한 흔적
금속 기물에 부착했던 장식물 추정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금박 유물. 서역문화의 ‘신라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학계의 관심이 높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금박 유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통일신라시대 궁궐 터에서 정교한 금박 유물이 나왔다(2016년 11월, 경주 동궁·월지). 종이처럼 얇게 편 금박에 사람 머리카락보다 섬세한 선을 무수히 그어 새 두 마리와 꽃들을 표현했다. 용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육안으론 식별이 불가능해 현미경을 이용해야만 문양을 살필 수 있다. 현대의 장인도 쉽사리 제작 못 할 수준이라 ‘불가사의한 작품’이란 평가가 나온다. 문양에 서역의 흔적이 강하다. 금속공예는 물론 회화사·문화사 측면에서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이 금박 유물 2점이 본래 ‘화조도’(花鳥圖)를 새긴 동일한 개체의 8세기 신라 장식물임을 확인했다고 16일 밝혔다. 출토 지점은 동궁(東宮)과 월지(月池) ‘나’지구 북편이다. 건물터와 담장터 사이에서 한 점, 회랑 건물터에서 다른 한 점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지점 거리가 약 20m, 유물들은 발견 당시 원래 형체를 알기 어려울 정도로 구겨져 있었다. 학계에선 "대단한 사건"이라며 놀라움을 표하고 있다. "맨눈으론 분간하기 힘든 유물 두 점이 다른 장소에서 나타나 하나로 합쳐졌다는 사실이 기적 같다(한정호 동국대 교수)."

가로 3.6㎝ 세로 1.17㎝ 두께 0.04㎜ 크기의 이 유물은 순도 99.99%의 순금 0.3g이 쓰였다. 그림에 들어 간 선(線)두께가 0.05㎜ 이하로 측정됐다. 머리카락(0.08㎜)보다 얇은 셈이다. 사다리꼴 단면에 좌우 대칭 새 두 마리를 배치했고, 중앙부와 새 주변에 단화(團華: 꽃을 위에서 내려다 본 문양)를 끝부분이 철로 된 날카로운 도구(鐵筆)로 빼곡하게 새겼다.

새 문양은 멧비둘기로 추정된다. 두 마리 새가 대단히 사실적으로 묘사됐는데, 암컷·수컷일 가능성이 높다. 단화는 통일신라시대의 문양이다. 경주 구황동 원지의 금동경통장식과 황룡사 서편 절터에서 나온 금동제 봉황 장식 등에도 들어 있다.

조각 기법과 문양을 바탕으로, 유물은 ‘선각단화쌍조문금박’(線刻團華雙鳥文金箔)으로 명명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서역 문화가 신라화한 양상을 잘 보여준다. "새 두 마리가 마주 한 문양은 실크로드·서역과의 관련성을 보여주지만 신라 나름의 특징이 있다."

이송란 덕성여대 교수는 "천상의 세계를 금박에 표현한 듯하다"며, "그토록 얇은 금박에 작자가 원하는 요소를 매우 완벽하게 표현해냈다는 점에서 세계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신라 전성기 금속 가공기술을 보여주는 수준 높은 문화유산"으로 평가한다.

5∼6세기 신라에 많던 금속 공예품이 삼국통일 이후엔 적어진다. 순금 제품은 더 드물다. 아직 유물의 정확한 용도가 파악되진 않았으나, 어딘가에 매달기 위한 구멍이 없는 점으로 미뤄 나무나 금속 기물에 부착했던 장식물로 추정된다.

김경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넓은 금박에 문양을 새긴 뒤 사용할 부분만 오려낸 것 같다"며, "단순 장식용이 아니라 신에게 봉헌하기 위해 제작된 물품일 가능성도 있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불가사의’한 금박 유물은 17일부터 10월 31일까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천존고 ‘3㎝에 담긴 금빛 화조도’ 전시에서 공개된다. 연구소 누리집에 접속하면 온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다. 

금박 유물과 사람 머리카락을 비교한 사진에서 그 정교함이 증명된다. /국립경주문화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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