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71년 앞두고 다시 이승만
건국 71년 앞두고 다시 이승만
  • 김태수 LA특파원
  • 승인 2018.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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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를 알고 美국익을 韓국익 맞게끔 끌어(知美→用美).

이승만 대통령은 건국 대통령이다. 대통령으로 10년 넘게 집권하면서 대한민국 건국의 기초를 닦았다.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미국 정계에서 활동해와 누구보다도 미국을 잘 알아 초대 대통령이 된 후 미국과의 외교협상에 직접 나서 건국과 관련한 외교를 모두 지휘했다.

지금 다시 되돌아보면 이승만 대통령이야말로 2차대전 후 독립하여 한국을 건국하는데 가장 알맞았던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는 누구보다도 미국을 잘 알고 미국을 이해하는 인물이 필요했다. 물론 당시 이승만 대통령 외에도 미국을 잘 아는 인사들도 있었다. 미국은 신생국 한국의 지도자로 사실상 서재필 박사나 장면, 신익희 같은 분들도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좀 더 정치적이며 다른 이들에 비해 정치적 경륜이 있었던 이승만 대통령이 대통령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 대통령은 남북 분단, 미국과의 상호방위조약 체결 등, 그리고 또 6.25전쟁을 치르면서 초창기 한국의 기본을 닦으며 엄청난 건국시대를 이끌어 온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전략은 미국을 잘 이해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용미(用美)라고도 할 수 있고 지미(知美)라고도 할 수 있었다. 당시 한국과 일본, 동아시아,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최강대국으로 등장한 미국의 힘이 한반도에서 행해지는 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한국 국익을 완벽하게 반영해냈다.

◇항일운동으로 옥에 갇혀 <독립정신> 집필

▲ 1904년2월 한성감옥 종신죄수 이승만이 감옥에서 몰래 쓴 명저 [독립정신] 표지. 뒷날 1910년 미국서 출판되었다.
▲ 1904년2월 한성감옥 종신죄수 이승만이 감옥에서 몰래 쓴 명저 [독립정신] 표지. 뒷날 1910년 미국서 출판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일찍이 외교에 눈을 떠 미국으로 유학 와 미국 유수대학에서 외교를 전공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항일운동을 하다 감옥에 갇힌 뒤 옥중에서 한국의 독립과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한 <독립정신>을 썼다.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국제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며 특히 미국 정가의 외교정책 결정과정을 잘 습득하고 있었다. 따라서 외교정책 결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일제시대 내내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이러한 외교적 활동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해방 후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미국 방문 시 외교정가 요로와 미국 유력 언론인들을 상대로 개별적인 로비활동을 펼쳤다. 또 각계각층 인사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한국에 유리한 정책이 결정되도록 노력했다.

한국 문제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주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미국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한국에서의 미국 이익을 추구하고, 이 미국 국익과 한국의 국익이 잘 들어맞는 방향을 최종적으로 고려해서 미국의 대한 외교정책이 결정되도록 이끌어갔다.

남북 분단문제서, 김구는 이승만 대통령과는 정반대로 오직 한반도 유일의 정부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이미 소련군과 미군이 남과 북에 주둔한 상황에서 현실적인 방법만이 유용하다는 결론에 입각하여 당시 사태를 이끌어갔다.

◇하지 사령관을 공산주의라고 공격

존 리드 하지. 제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고, 미군 제24군단장으로서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주한미군 사령관 겸 미군정청 사령관으로 활동했다. 미군정기간 중 한국의 이승만, 김구 등과 정치적으로 충돌했고 김규식을 실권 없는 대통령으로 추진하려다 실패하기도 했다.
존 리드 하지. 제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고, 미군 제24군단장으로서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주한미군 사령관 겸 미군정청사령관으로 활동했다. 미군정기간 중 한국의 이승만, 김구 등과 정치적으로 충돌했고 김규식을 실권 없는 대통령으로 추진하려다 실패하기도 했다.

이승만은 하지 중장이 해방 후 주둔한 미군사령관이 되고 1948년 건국이 선포되는 동안 민주당원이었던 하지 중장을 공산주의자라고 공격하는 등 당시 전체적 명제로 굳혀지고 있던 반공주의를 강력히 표방했다. 이승만과 적대적 관계에 있던 하지 중장은 장면을 이승만 대체인물로 심각히 고려하기도 했다.

여기서 보면, 한국 실정을 정확히 모르는 미국에게 한국적 정치 해결안을 내세우고 미국의 대한국 정책을 이끌어갔다는 것이 이승만의 당시 외교전략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을 활용하고 미국을 아는 힘을 바탕으로 한국의 국익을 미국의 정책에 맞추어 끌고 나간 것이다.

6.25전쟁 도중 반공포로 석방이 그 좋은 예다. 이승만은 북한, 중공과의 휴전협상이 잘 안되자 반공포로를 과감히 석방해 한국이 상황을 이끌도록 했다. 이 반공포로 석방에 대해서는, 주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반공포로들이 석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당시 거제 포로수용소에는 과격한 친공포로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실제 석방된 반공포로들은 거제도를 제외한 전국 각지에 있었던 포로수용소 출신들이었다. 그것도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 아래 한국 헌병이 포로들을 석방 - 엄밀히 말하면 탈출 방조 – 했던 것이다.

당시 포로수용소에는 친공, 반공 포로들이 대립해서 친공 포로들이 반공 포로들을 살해하는 경우도 많았다. 반공포로들은 이로 인해 거제도 외에 다른 수용소에 수용되었고 거제도에는 친공포로들만이 수용되어 있었다.

당시 석방된 포로들은 거제도를 뺀 전국 각지의 반공포로들이었다. 기록에 보면 거제도에서는 당시에 한명도 석방되지 않았다고 있다. 반공포로들의 석방이 어느 정도 미국과의 상호방위조약에 영향을 주었는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하지 중장을 공산주의자로 몬 것과 비슷한 영향을 주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이승만 대통령이 대미 협상을 어떻게 리드해 갔느냐를 알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렇게 미국을 요리하는 데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완벽한 태도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일본에 대해서는 강력한 반감을 갖고 있어서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전혀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일본식 경제개발 요구하는 미국과 대립

이승만은 소위 ‘이승만 라인’이라고 불리는 평화선을 선포해 일본을 완전히 적대시했다. 이승만은 6.25전쟁 도중 그리고 전쟁 후에도 계속하여 이 평화선을 넘는 일본 어선들을 300여척 이상 나포하여 구금했다. 이러한 강력한 반일정책은 일본식의 경제발전을 요구했던 미국과 이승만이 대립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승만의 정치고문으로서 오랫동안 이승만의 외교정책을 자문하고 도움을 주었던 로버트 올리벅 박사는 그의 책 <신화에 가린 인물 이승만>에서 “인간 이승만은 새로운 한국의 창설자, 아시아 민주주의의 매개자, 때로는 미국의 의지에 반(反)하면서까지 미국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 수호를 위해 온 힘을 다한 인물로 정의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승만의 홍보 자문역이었던 로버트 올리버 박사
이승만의 홍보 자문역이었던 로버트 올리버 박사

김용식 전 대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발탁해 하와이 호놀룰루 총영사로 시작하여 필리핀 대사, 미국 대사 등을 역임한 한국 외교의 산 증인이자 개척자다. 그런 그의 자서전 <새벽의 약속>을 보면 당시 건국 초기 외교는 거의 모두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지휘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승만은 장면 초대 주미 대사에 이어 하와이에서 개업 중이던 의사 양유찬을 전혀 외교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주미 대사로 임명했다. 이는 이승만 대통령 자신이 직접 미국을 대하려는 의도였다.

같이 보면 이승만 대통령은 2차대전이 끝나고 세계가 냉전시대로 접어들던 시기에 세계정세를 완벽히 파악해서 동아시아와 한국에서의 냉전정책을 이끌어나갔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미국 내 어느 정계인사들보다도 더욱 반공의 중요성을 알았다. 이런 세계 정세를 탁월하게 분석하는 능력으로 건국초기, 반공주의에 입각한 외교정책노선을 확립했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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