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부부란 여름날 멀찍이 잠을 청하다가도
어둠 속에서 앵하고 모깃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너무 많이 짜진 연고를 나누어 바르는 사이이다
남편이 턱에 바르고 남은 밥풀만한 연고를
손끝에 들고 나머지를 어디다 바를까 주저하고 있을 때
아내가 주저 없이 치마를 걷고
배꼽 부근을 내미는 사이이다
그 자리를 문지르며 이달에
사용한 신용카드와 전기세를 함께 떠올리는 사이이다
결혼은 사랑을 무화시키는 긴 과정이지만
결혼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만
부부란 어떤 이름으로도 잴 수 없는
백년이 지나도 남는 암각화처럼
그것이 풍화하는 긴 과정과
그 곁에 가뭇없이 피고 지는 풀꽃 더미를
풍경으로 거느린다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네가 쥐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내 손을 한번 쓸쓸히 쥐었다 펴보는 사이이다
서로를 묶는 것이 거미줄인지
쇠사슬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부부란 서로 묶여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느끼며
오도 가도 못한 채
어린 새끼들을 유정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이이다

문정희(1947~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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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해설이 필요 없는 작품이다. 부부에 관해 많은 시가 있지만 이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한 시인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틀어 문정희 시인이 유일할 것이다.

시인은 한 치 가식 없이 남편에 대해, 남자에 대해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다 드러낸다. 그래서 신선하고 때로 충격적이다. 남성에 대한 시편들은 반 페미니즘 정서라기보다 에코페미니즘에 가깝다. 그것은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에 대한 대항이나 저항이 아닌 자연의 순리에 따른 공존과 화합의 새로운 여성성의 추구다.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이 시를 한번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그들은 동전의 한 쪽 면만 본다. 결혼해서 다시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가지 않은 길을 가보는 게 낫지 않을까.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부부란 ‘어둠 속에서 앵하고 모깃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합세하여 모기를 잡는 사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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