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선우예권 이어 2연속 한국인 우승 ‘스타 탄생’

쇼팽 콩쿠르 등과 함께 세계적 권위...청중상·현대곡 최고연주자상도
유학 안한 순수 토종 피아니스트...무결점의 압도적 연주로 매료시켜

임윤찬(18세)이 반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로 우승했다. 18일(현지시간) 이 대회에서 그는 ‘청중상’ ‘신곡최고연주상’까지 받았다(미 텍사스 포트워스 베이스 퍼포먼스홀). /연합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 콩쿠르에서 임윤찬(18)이 우승을 차지했다. 손열음(2009년 2위)과 선우예권(2017년 우승)의 기록을 넘어, 이 콩쿠르 역대 최연소 우승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세계적인 국제음악 콩쿠르가 많지만, 피아니스트들만 겨루는 최고의 경연대회로 흔히 소팽·부조니·반 클라이번 콩쿠르를 꼽는다. 실시간 유튜브 방영으로 전 세계 전문가·애호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윤찬의 결선무대는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각인시켰다.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의 ‘무결점 압도적 연주’가 끝나자마자 장내는 우뢰같은 갈채에 휩싸였다.

이 순간의 예상대로 그는 청중상까지 거머쥔다. 그 외 지정곡(스티븐 허프 1961~ )으로 ‘현대곡 최고연주상’도 받았다. 비범한 이해력·해석력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임윤찬은 7살때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평범하게 음악을 시작했다. 그 역시 다른 몇몇 뛰어난 한국인 음악인들처럼 집안에 특별한 클래식음악 배경이 없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 출신이다. 해외에 유학한 적 없는 한국 토종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2015년 조성진의 한국인 최초 쇼팽 콩쿠르 우승 이래 ‘그 다음’을 기다리는 열망이 높은 가운데, 임윤찬은 조성진과 또 다른 매력, ‘새로운 색·질감의 피아니스트’로 주목받게 됐다.

영재아카데미(예술의 전당)에서 초등2학년이던 임윤찬에게 3년간 음악이론을 가르친 작곡가 임경신은 "또래 아이들과 매우 다른 성정의 인상적인 제자였다"고 회상한다. 진지함이 남달랐다는 것이다. 일찍부터 임윤찬은 콩쿠르로 유명해지는 것보다 음악 자체, 해당 음악가들의 세계와 시대를 깊이 파고드는 탐구심을 보이는 등, ‘철학자 피아니스트’의 싹을 보여준다.

작년 가을 프란츠 리스트의 ‘초절(超絶)기교’를 80분간 중간휴식 없이 선보이며 ‘괴물신인’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말그대로 ‘초 절정의 기교’를 요하는 이 난곡은 테크닉 완성을 위해 피아니스트들이 넘어야 할 높은 산의 하나다. 이 곡을 기교적 측면 뿐 아니라 작곡자의 삶·시대 전체의 흐름을 조망하고자, 유례 없이 ‘쉼 없는 80분 연주’를 감행했던 것이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1958년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인 미국인 반 클라이번(1934~2013)을 기념해 1964년부터 4년마다 열린다. 코로나19 상황으로 한 해 미뤄져 이번에 제16회를 맞았다. 60주년 기념으로 상금이 종전의 두 배, 국제콩쿠르 사상 최고액 10만 달러(1억2700만원)가 수여된다. 무대 기회도 많아진다. 다만, 국제콩쿠르란 심사위원 구미에 맞는 정형화된 연주에 가까울수록 유리한 측면이 있다. 임윤찬 같은 피아니스트가 평소 콩쿠르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이유다. 그럼에도 이번 기회에 도전한 것은 콩쿠르를 통해 주목받지 않으면 나아갈 길이 막연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K클래식의 성과는 K팝 등 한류 대중문화와 달리 ‘시장 없이 성공한 명품’에 가깝다. 부자라야 할 수 있는 게 클래식 음악이던 시대가 옛말이긴 하다. 그러나 여전히 재능있는 다수의 클래식 음악인들이 불안정한 삶에 처하거나 콩쿠르에 매달리거나 좌절한다. 금호영재아카데미 등 민간의 주요 메세나(후원자)가 있지만 매우 부족한 현실이다. 국가적(공적) 지원 및 인프라 확충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임윤찬은 2020년 예원학교를 전체수석으로 마치고 한국종합예술학교에 재학 중이다(손민수 교수 사사). 무대경험 삼아 나간 몇몇 국내외 주요 콩쿠르에서 우승·준우승을 치지한 바 있으나, 세계적인 연주가로 데뷔하는 것은 이번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이 결정적이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20세기 미·소 냉전의 한복판에 문화적 경쟁구도 속에서 태어났다. 텍사스州 석유 재벌들이 후원하는 만큼, 상금도 혜택도 많다. 그럼에도 지금껏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아 온 것은 클래식 문화 패권이 유럽 쪽에 기울어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런 구도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계기는 역시 ‘스타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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