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폭등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석유화학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여수 석유화학산업단지 전경. /한화케미칼
국제유가 폭등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석유화학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여수 석유화학산업단지 전경. /한화케미칼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석유화학업계가 올 들어 고유가와 수요 감소라는 원투펀치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유가 폭등으로 원가부담이 치솟은 반면 인플레이션 위기 속 경기둔화로 수요는 바닥을 기는 실정이다. 3분기까지 이어질 업황의 ‘락바텀(Rock Bottom, 최저점)’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는지에 따라 올해 성적이 갈릴 전망이다.

19일 한국은행은 ‘세계교역 여건 점검·평가’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교역 둔화세가 향후 5분기 동안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리오프닝(경제 재계) 과정에서 불거진 공급망 불안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의 영향으로 급등한 국제 원자잿값이 ‘물가 상승→금리 인상→경기 둔화→수요 감소’로 이어진 결과다.

이에 국내 산업계는 올해 실적에 먹구름이 잔뜩 꼈다. 그중에서도 석유화학업계는 곡소리가 나는 수준이다. 최근 3개월간 증권사 컨센서스를 종합하면 롯데케미칼·LG화학·금호석유화학·한화솔루션 등 주요 업체의 올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두자릿수 감소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 기업은 올 1분기에도 전년보다 20~80%나 영업이익이 줄었는데 2분기에는 1분기보다도 각각 25.3%, 13.8%, 20.9%, 6.9%의 추가 하락이 예견되고 있다.

조현렬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작년 상반기 엔데믹 기대에 따른 일시적 회복 이후 수요와 공급 모두에서 악재가 맞물리고 있다"며 "하반기도 고난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석유화학업계가 올해 직면한 최대 악재는 석유화학 기초소재이자 제조원가의 약 70%를 차지하는 나프타의 가격 상승이다. 고유가로 원유 부산물인 나프타 가격이 치솟아 수익성이 ‘떡락’한 것이다. 실제 올 1분기 국제 나프타 가격은 톤당 884달러로 2014년 3분기(915.68달러)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2020년 4월의 100달러와 비교하면 9배 가까이 뛰었다.

물론 수요가 충분하면 원가부담을 제품가에 반영해 수익성 제고가 가능하지만 석유화학업계는 이마저도 불가하다. 국내 화학제품의 40~50%를 수입하는 중국의 도시봉쇄 장기화로 수출 타격이 큰 데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정부의 금리인상이 전방산업을 위축시켜 내수도 부진한 탓이다.

여기에 중국 석유화학업계의 무분별한 설비증설에 의한 공급과잉 우려까지 대두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만 해도 올해 전 세계에서 증설되는 설비 규모가 역대 최대치인 1294만톤에 이른다. 내년에도 932만2000톤의 증설이 예고돼 있다. 이중 중국의 비중이 각각 54%(703만톤), 59%(550만톤)에 달한다. 이미 이달 둘째주의 에틸렌 스프레드(제품가에서 나프타의 가격을 제외한 것)가 톤당 300~350달러인 손익분기점을 크게 밑도는 183달러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중장기적 불활실성을 더하는 요인이다.

이처럼 가뜩이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석유화학업계에게 최근 화물연대의 파업은 치명타가 됐다. 생산·출하·수출이 차질을 빚으며 지난 7일부터 단 6일 동안 최대 4조원의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김평중 한국석유화학협회 본부장은 "LG화학 등 8개 대형회사에서만 하루 평균 600억원, 누적 5000억원의 매출 손실을 입었다"며, "전체 32개 회원사의 피해액은 이의 4배 수준으로 추산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석유화학업계는 앞다퉈 ‘생존전략’ 모색에 분주하다. 장밋빛 ‘성장전략’을 내놓았던 연초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문제는 아직도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증권가는 석유화학업계의 락바텀을 3분기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각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하향조정되고 있어 자칫 4분기에도 반등하지 못한 채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갈 개연성도 배재키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 제품은 소비재·자동차·건설 등에 다방면에 쓰여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면 수요 회복도 기대하기 어렵다"며 "가성소다 등 수요가 느는 일부 제품을 통해 매출 부진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원가절감과 공급망 다변화로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