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옥과 최은희의 북한 탈출 [2]
신상옥과 최은희의 북한 탈출 [2]
  • 마이클 리
  • 승인 201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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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체사상탑 앞에서 사진 찍는 신상옥과 최은희

1월 14일 저녁 늦게 이상희가 급히 와서 지금 그 재벌가가 돌아왔는데 당장 최여사를 만나기를 원한다며 그가 타고 온 자가용에 최여사를 싣고 호텔을 떠났다. 최여사는 핸드백 하나만 들고 따라가며 기뻐서 정신이 없었고 흥분상태에 있었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니 해변 가에 있는 큰 호텔에서 그분이 기다리고 계시다고 하였다. 차가 <완짜이>를 지나서 나무가 우거진 어떤 고갯길을 통과할 때 이상희를 따라와서 동승한 그 재벌가의 비서라고 하는 어떤 중년남자가 갑자기 흰 수건을 꺼내어 최여사의 얼굴을 덮고 마취시켜버렸다.

그들은 마취된 최여사를 데리고 해변으로 가서 야음으로 주변이 캄캄할 때 고속고무보트에 최여사를 넘기고 고무보트는 공해로 빠지고 공해에서 대기하고 있던 북한공작선에 인계했다. 그 공작선은 최여사를 배 밑바닥 선실에 가두고 어디를 어떻게 통과해 왔는지 1월 22일 밤에 북한의 남포항에 도착했다. 남포항에는 김정일과 대외연락부 부부장 임호군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남포항 도착직후 멀미를 삭히기 위해 조사부 부부장 강해룡 감시하에 산책하는 최은희씨.사진. 사진=연합뉴스
남포항 도착직후 멀미를 삭히기 위해 조사부 부부장 강해룡 감시하에 산책하는 최은희씨.사진. 사진=연합뉴스

국내에서 영화제작을 할 수 없는 신감독은 일본 프랑스 미국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살 길을 찾아 헤매던 중, 홍콩에서 최은희여사가 북으로 납치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뼈저린 죄책감을 느꼈다. 그와 오수미와의 관계, 이혼, 재정적 어려움 등이 최여사를 불행하게 만든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홍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미국에서 홍콩으로 달려갔다.

◇신상옥도 홍콩서 최은희와 똑같은 방법으로 납치

신상옥 감독
신상옥 감독

홍콩에서는 신감독이 전에 영화필름이나 촬영기자재를 구입할 때 거래하던 김00 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를 찾아갔다. 그는 신감독에게 최여사를 구출해내는 방법을 모색해보자면서 신감독이 홍콩에서 새로운 활동을 시작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말하자 순진한 신감독은 그대로 믿었다.

그런데 세상에 이자도 북한 첩자인 것을 아무도 몰랐다. 1978년 7월 19일, 신상옥 감독도 최여사와 똑같은 방법으로, 똑같은 함정에 빠졌고, 동일한 루트를 거쳐 북으로 납치되어 7월 23일 남포항에 도착하였다.

북한에 끌려간 신감독은 저들의 집요한 쇠뇌공작과 설득에도 응하지 않았다. 그는 두 번씩이나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평양시 승호리에 있는 보위부 수용소에 수감되어 3년 10개월간 고생을 하였다.

승호리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건강이 나빠졌고 허술한 병원에서 간장 생체조직검사 (biopsy)를 하였는데 소독이 잘 안 된 기구를 사용했기 때문에 C-형 간염이 감염되어 향후 계속 그 병 때문에 투병하며 살았다. 그가 탈출하고 후일에 서울에 왔을 때에도 간 이식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그 병 때문에 2006년 4웡 11일 서울대학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고집이 센 신감독을 설득하기가 힘들다고 느낀 김정일은 방법을 바꾸었다. 그를 바로 석방하여 자기의 별장에서 최여사와 상봉하게 하였다. 그때까지 최여사는 신감독도 자기처럼 납치되어 평양에 와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눈물겨운 재회를 통하여 신감독은 여생을 최여사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겠다는 속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재회 이후 김일성과 김정일은 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최대한의 배려를 하였고 북한의 영화를 국제수준으로 창달하여 줄 것을 주문하였다. 그리고 그들을 자주 만나고 중요한 연회석이나 가정모임에 초청하여 격이 없는 대우를 하였다.

◇신상옥, 신뢰 얻은 뒤 탈출하리라 결심

납북돼 북한에 머물던 시절 신상옥·최은희 부부는 북한 체제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영화를 만들었다. 김일성(가운데)과 환담 중인 신상옥(왼쪽)과 최은희
납북돼 북한에 머물던 시절 신상옥·최은희 부부는 북한 체제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영화를 만들었다. 김일성(가운데)과 환담 중인 신상옥(왼쪽)과 최은희

신감독은 아주 현명한 사람이었다. 자기와 최여사가 살아남는 길은 오직 이 두 독재자들의 마음에 들도록 행동하여 신임을 얻은 후에 운신의 자유가 확대 되었을 때 무슨 일이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저들의 요구에 따르기로 결심하고 본격적으로 영화제작활동을 개시하였다.

김정일은 <신필름 영화촬영소>를 지어주고 자금도 노동당의 어떤 과업보다도 우선순위로 지원했다. 신감독과 최여사는 북한 영화예술에 새로운 바람을 불게 하였고 모든 영화배우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그들을 따랐으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들의 작품을 보고 환호성을 올렸다.

인민들이 신감독과 최여사를 더 좋아해서 김정일이 질투를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재북기간 중에 총 17편의 영화를 제작하였다고 하니 얼마나 혹사했는지 짐작이 간다. 그중에 <탈출기>, <소금>, <불가사리>, <돌아오지 않은 밀사>는 외부 세계에도 알려진 작품들이다.

특히 구한말 고종황제의 밀사로 화란의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갔다가 할복자살한 이준 열사를 주제로 제작한 <돌아오지 않은 밀사>는 1984년에 체코 <카를로비바리> 영화제에서 신감독이 특별감독상을 수상했다. <소금>은 1985년 모스코 영화제에서 최여사가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들의 작품이 국제영화제에서 각광을 받기 시작함으로 그들의 위상이 높아졌고 김부자의 신임과 배려가 더 좋아졌다.

납북돼 북한에 머물던 시절 신상옥·최은희 부부는 북한 체제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영화를 만들었다. 김정일(가운데)과 환담 중인 신상옥(왼쪽)과 최은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감시는 계속 철저했으며 절대로 부부가 동반하는 외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최여사가 부다페스트에서 담석 수술을 받을 때에도 혼자 다녀왔다. 신감독이 부다페스트와 비엔나와 프라하에 자주 갔지만 늘 경호감시원이 따르는 단독 여행이었다.

그런데 1984년 런던 국제영화제에 신감독과 최여사가 처음으로 부부 동반하여 참석하게 되었다. 그때 한국에서는 영화배우 남궁원과 김지미가 참석했는데 그들이 신감독과 최여사를 보고 너무 반가워서 인사를 했으나 신감독과 최여사가 어찌나 쌀쌀맞게 그들을 대했는지 김지미는 섭섭하여 펑펑 울었다고 한다.

북에서의 생활이 어떠냐고 질문하자 그 두 사람이,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따뜻한 배려로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이 잘 지내고 있으며 영화제작활동도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당의 지원을 받고 있고 최대한으로 자유분방한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은 지구상에서 북조선 공화국 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궁원과 김지미에게 쌀쌀맞게 대함

북한에서 영화 촬영 당시 신상옥과 최은희

그리고 남궁원과 김지미에게 이상한 생각을 품고 자기들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경계했다. 이처럼 엄청난 거짓말을 해 놓고 신감독은 속으로 울었다. 자기의 조국을 배신하는 말과 행동을 뻔뻔스럽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짧은 한 토막의 연기로 그는 후에 많은 것을 얻어내게 되었다.

그들을 따라온 4명의 북한 경호감시원들이 평양에 가서 이 사실을 보고했고, 김일성 부자는 신감독과 최여사가 이제 완전히 자기들의 사람이 되었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저들의 의심과 감시가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었다.

한편 한국에 돌아온 남궁원과 김지미는 런던 영화제에 가서 신감독과 최여사를 만났던 이야기와 저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김일성의 사람이 되었는지를 언론에 퍼트렸고 독자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그러나 저들의 진심을 몇 사람이나 눈치를 챘을까.

이 사건 이후에 김일성 부자가 신감독과 최여사를 대하는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자유스러운 부부동반 해외여행이 허락되었다. 김정일은 북한이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 개설한 금별은행에 230만 달러를 신상옥 구좌로 예치해 놓고 영화 사업과 제작기자재 구입에 마음대로 사용하라고 선심을 베풀었다. 이때부터 신감독은 본격적으로 탈출계획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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