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초장기 대치 상태’를 전망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예컨대 한반도처럼, ‘종전’ 대신 ‘휴전’, 즉 서로를 견제하며 때때로 갈등·긴장 수위가 치솟는 상태를 이어갈 것이란 시각이다.
17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가 미국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대비하고 있다며 이같은 전문가 견해를 전했다. 1953년 (한국전쟁) 휴전 후 현재까지 남북한 경계선(휴전선) 양측에 중무장 군인을 배치해 온 역사를 소개하는 한편, 현재 러시아 점령 지역과 나머지 우크라이나군 통제지역 간 대치가 길어지면 남북한 같은 형국이 초래될 수 있다고 내다본 것이다.
"러시아가 지휘체계 불안, 사기 저하, 군수 문제 등을 겪는다 해도 동부 우크라이나 상황은 러시아 쪽으로 더 기울어 있다."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의 분석이다. ‘돈바스 공략’으로 목표를 재설정한 이후 러시아는 장거리 미사일 등을 써서 우크라이나 주요 거점을 파괴하며 점령지역을 확대해 왔다. 이에 맞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물자 지원이 계속되고 있으나, 현 상황이 ‘교착 상태’인 것은 피차 인정하는 분위기다.
"우크라이나가 계속 피 흘려 싸우도록 지원할 것인가, 지원을 끊고 러시아의 승리를 감내할 것인가, 미국에게 남은 선택지다. 다만 지원을 끊으면 우크라이나를 늑대 무리에 던져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냉혹한 현실 판단과 당위 사이의 딜레마도 토로된다. 물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넘어 다른 나토 회원국까지 넘보지 않도록 지원을 멈출 수 없다는 주장 또한 여전히 강력하다.
한국전쟁 당시 스탈린은 북한과 중국을 지원하며 전쟁 장기화를 꾀했다. 미국의 군사력과 자원을 소모시키기 위해서였다. ‘미국을 동북아에 붙잡아 둔 채 유럽을 요리한다’는 구상이기도 했다. 휴전 협상 당사자(유엔·미국·중공·북한)도 아니면서 배후에서 결정적 키를 좌우한 셈이다. 전투가 진행되는 가운데 2년간 겉돌던 휴전협상은 스탈린이 죽음으로 겨우 타결됐다. 우크라이나의 경우에도 한반도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이 전쟁의 장기화이자, 러시아의 쇠락을 꿈꿔 온 미국 민주당 및 바이든 정부의 전략에 부합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미국은 ‘통일 없는 전쟁 종료’에 반대하는 이승만 정부와 1953년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주한미군을 유지했다. 우리나라는 미국 및 서방의 후원 속에 스스로의 잠재력을 발휘해 산업화·민주화의 과업을 이뤘다. 북한 역시 소련의 대대적인 지원으로 평균 41%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한 바 있다. 중국-소련의 갈등을 이용해 직접적인 통제권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소련 및 동구권 몰락 이후 세계사는 잘 아는대로다. 경제력만 봐도 북한은 남한의 2%에 못 미친다.
우크라이나·러시아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됐고, ‘종전’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냉전시대 북한이 소련·중국 사이에서 누린 ‘등거리 외교’ 효과도 재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21세기 우크라이나는 ‘전선’을 긋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냉전은 미국·중국의 대결이지 서방·러시아가 아니다. 우크라이나의 본격적 ‘국민 만들기’(Nation Building)는 가능할 수 있다. 참혹한 전쟁의 기억이 그 토대로 활용될 것이다. 산업화·민주화는 그 다음 일이다. 현대국가로서 출발점에 선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