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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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입니까?" 2007년 여의도통신이 국회의원 29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1위는 79표를 얻은 김구 선생, 이게 대단한 이유는 그와 경쟁한 후보를 보면 알 수 있다. 이순신 (31명), 정약용 (16명), 세종대왕 (10명), 간디 (6명) 등등 전 세계의 기라성같은 인물을 제치고 1위를 한 것이니까. 김구의 삶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상해임시정부의 주역으로 일제와 싸웠고,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와 광복군 창설 등에도 깊이 관여했다. 네 소원이 뭐냐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첫 번째도 대한독립, 두 번째, 세 번째도 대한독립이라고 말할 것이라는 그의 시는 나를 비롯한 수많은 아이의 심금을 울렸다. 해방 이후에는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통일된 대한민국을 주장했는데, 평양으로 가서 김일성을 만난 1948년 회담은 그의 진정성을 알 수 있는 명장면이다.

하지만 김구는 정치인으로서 성공하지 못했다. 먼저 일제로부터의 해방은 임시정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국과 소련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찾아왔다. 다음 기사를 보자. "미군정은 임시정부 요인들을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게 하는 등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김구가 주장한 통일정부 수립은 당시 상황에선 실현 불가능한 이상론이었다. 결국 김구는 초대 대통령을 이승만에게 빼앗겼고, 1949년 안두희가 쏜 총에 맞아 74년의 험난한 삶을 마감하고 만다. 이렇듯 실패한 정치인인 김구가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군림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사람들은 약삭빠르게 행동해 성공한 이보다, 실패할지언정 이루기 힘든 목적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인 이를 좋아한다. 두 번째, 비극적인 죽음은 남은 자들에게 아쉬움을 남겨, 죽은 이를 더 위대한 이로 만들어준다. 모차르트가 베토벤보다 더 사랑받는 게 그 예다. 셋째, 김구는 정치인들에게 안전한 선택지였다. 1980년대만 해도 ‘국시는 반공이 아닌, 통일이어야 한다’고 말한 국회의원이 구속될 정도였으니, 좌파들로서는 여운형 같은 이를 선택해 사상을 의심받는 것보단 우파에 속하는 김구를 존경함으로써 안전을 보장받으려 했다. 이건 우파들도 마찬가지여서, 4·19에 의해 하와이로 쫓겨난 이승만보단 김구를 존경한다고 해야 더 합리적인 정치인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

"송강호 배우가 출연한 영화 ‘변호인’을 좋아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송강호의 칸영화제 수상을 치하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김건희 여사도 윤 대통령이 그 영화를 본 뒤 두 시간 동안 울었다고 하니, 빈말은 아닌 듯하다. 노무현을 존경한다는 이는 윤 대통령만은 아니어서, 한국갤럽이 2019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노무현은 이순신과 세종대왕에 이어 3위를 차지한 바 있다. 노무현이 존경받는 이유는 김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첫 번째, 그는 지역감정을 없애겠다며 민주당 간판을 달고 부산에서 여러 번 낙선했다. 대통령 재임시엔 탄핵안 가결로 고초를 겪었고, 정권연장에도 실패했다. 두 번째, 그는 뇌물죄로 검찰 조사를 받던 중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셋째, 노무현은 정치인들에게 안전한 선택지다. 좌파 입장에선 자기네 지지자들이 노무현을 신격화하는 마당이니, 거기 합류하는 게 득표에 유리하다. 다음으로 우파. 박정희·전두환은 독재, 김영삼은 외환위기, 이명박·박근혜는 구속 등등 우파 대통령들에겐 다 ‘과’(過)가 있는데다, 우파면서 노무현을 좋아한다고 하면 ‘합리적인 보수’로 인식됨으로써 득표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김구와 노무현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김구와 달리 노무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그의 공과를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것. 그가 검찰수사를 제대로 받았다면, 그리고 그 결과에 따른 합당한 처벌이 내려졌다면, 그가 지금 같은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까? 그래서 난 정치인들이 노무현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게 불편하다. 그 대부분이 표를 위한 것인데다, 그런 식의 언사가 노무현을 제대로 평가하는 걸 방해하기 때문이다. 내 페친이 한 말로 글을 마무리한다. "돌아가신 분 이름 대면서 정치하는 것,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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