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김정은이 평양 보통강 강안(강변) 다락식(테라스식) 주택구에 있는 리춘히(분홍색 상의) 조선중앙TV 아나운서의 새집에서 그녀 가족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
올해 4월 김정은이 평양 보통강 강안(강변) 다락식(테라스식) 주택구에 있는 리춘히(분홍색 상의) 조선중앙TV 아나운서의 새집에서 그녀 가족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

‘아나운서’ 또는 ‘앵커’를 북한에선 ‘방송원’이라 부른다. 북한에서도 기품있고 교양있는 직업이다. 방송국 입사 역시 남한에서 만큼 어렵다. 아무리 화술이 뛰어나도 외모 호감도가 떨어지면 안 된다. ‘당국의 스피커’로서 생김새나 태도가 의젓해야 하며, 당연히 사상성은 기본이다. 조선중앙TV(중앙방송위원회 관할) 간판 아나운서 리춘희(80)가 대표적이다. 특유의 발성으로 엄숙하고 긴장감 넘치는 전달력이 독보적인 존재로 통한다.

1971년 데뷔한 리춘희는 김일성상·김정일표창 등 주요 상을 휩쓸었고 북한 아나운서의 최고 영예인 ‘인민방송원’과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올해 4월 김정은이 ‘명당 중의 명당’ 보통강변 주택구 아파트를 선물해 화제가 됐다. 당시 김정은이 리춘희의 손을 잡고 새집 곳곳을 돌아보며 그녀 가족들과 기념촬영까지 하는 등 극진함을 보였다. 월급·배급이 끊겨 식량을 자체 해결해야 했던 이전 시대와 격세지변의 대우다.

1970년대 후반부터 김일성 주체사상을 이행하며 방송원의 사상 교양 자격 기능이 강조됐다. 1980년대 들어 김정일 제시의 ‘주체적 출판보도강령’이 구체화되고, 후계 구도가 단단해졌다. 김일성·김정일 사후에도 북한 방송은 크게 변하지 않았으나, 김정은 집권 후 다소 변화가 일었다. 내용물과 화면 구성, LED TV 보급 확대, HD화질 방송 송출 등을 들 수 있다. 북한 내 사건·사고 소식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던 과거에 비해, 김정은 시대엔 자연재해·아파트 붕괴 등의 소식을 전하기 시작한 것도 그렇다.

또 오후 5시에 시작했던 평일 방송을 오후 1시(2013년부터)로 앞당겼다. 특히 아나운서들의 연령대를 대폭 낮췄으며, 억센 억양 대신 부드러운 말투가 등장했다. 이런 변화는 2000년대부터 북한 주민들이 CD·DVD를 통해 외부 문화를 접하면서 조선중앙TV 관심이 점차 줄어든 추세와 비례한다. 물론 방송의 주제와 논조는 옛날의 보도 지침 그대로다.

다만 한국·미국을 비난하는 내용이나 통일 관련 내용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요 몇년 가장 달라진 게 ‘특별중계보도’라는 편성인데, 주로 핵실험 관련 소식이다. ‘힘자랑’으로 흔들리는 민심을 다잡으려 하는 모양새다. ‘장마당 세대’를 거쳐 해외 유입물이 일상화된 북한의 MZ세대에게 얼마나 통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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