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해방의 진정한 의미를 기리기 위해 모두를 위한 미국이라는 약속을 실현하기까지 안주해선 안 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노예해방기념일(Juneteenth Day)인 19일(현지시간) 성명을 냈다. 그는 "불평등을 뿌리 뽑고 우리 모두를 위한 자유와 정의를 확실히 할 것"이라며, 흑인에 대한 경제적 기회 확대·대학 지원 강화·보건 증진·투표권 확대 등을 성과로 꼽았다. 북한을 21세기 노예해방의 문제로 여기는 사람들에겐 울림이 각별한 날이기도 하다.
‘흑인노예’ 역사란 미국의 뿌리 깊은 갈등의 불씨다. 그러나 이를 미국 내지 백인들만의 업보로만 보는 것엔 문제가 있다. 이에 기반한 ‘비판적 인종이론’(Critical Race Theory)으로 백인 주도의 근현대사를 통째로 ‘적폐’ 취급하며 ‘청산·부정’(canceal)을 외치는 흐름이 근년 미국의 정계·학계·언론계에 강해졌다. 초중등 역사교육을 둘러싸고 진영이 크게 갈린 상황이다. 인종문제가 철저히 정치적으로 이용돼 왔다는 사실을 미국의 보통 시민들도 깨닫기 시작했다.
노예는 인류사의 발전에 매우 절실한 요소였으며, 부족 간 국가 간의 알력·전쟁 등을 통해 자연스레 생겨났고 활용됐다. 근대적 과학·기술 혁명 이전엔 노예노동 없이 작동하는 경제를 상상하기 힘들었다. 미국의 모든 흑인노예가 야만적 ‘노예사냥’으로 충당된 것도 아니다. 아프리카인들 끼리의 갈등 속에 무수한 노예가 발생하고 백인들에게 팔려가기도 했다.
오늘날 ‘비판적 인종이론’(CTR)이 미국 민주당 및 그 지지자들의 논리로 받아들여 지지만, 정작 ‘노예해방선언’은 공화당의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 대통령이 실현했다. 노예해방을 남부 노동집약적 경제의 무력화와 북부 산업화의 노동력 확보 측면에서만 보는 것도 전형적 CTR식 해석이다.
노예해방의 날에 함께 기억돼야 할 것은 링컨 대통령, 특히 남북전쟁(1861~65)의 분수령 게티스버그 전투의 땅에서 펼친 그의 연설이다(1863년 ‘게티스버그 연설’)이다. "87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자유의 정신으로 잉태되고 만인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신념을 바쳐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고귀한 순국선열들이 신명을 바친 그 대의를 위해 더욱 크게 헌신하여야 한다"고 링컨은 역설했다.
"이 나라가 하나님 아래 자유의 새로운 탄생을 누려야 할 뿐 아니라,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통치가 지상에서 소멸하지 않아야 한다는 위대한 사명에 우리 스스로를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링컨의 말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더구나 ‘북한해방’을 생각하는 한국인들에겐 현재진행형이다.
링컨 대통령은 초당적 인물들을 영입해 노예제 문제로 분열됐던 국가의 통합에 애썼다. "내가 옳은 일을 한다는 확신을, 여기 서명하는 지금 이 순간만큼 느껴본 적이 없다"고 1863년 1월 1일 노예해방선언의 순간 링컨은 말했다. 당시 ‘노예해방선언문’엔 남부 여러 주의 노예를 즉시 전면 해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오늘날 기념하는 노예해방일은 1865년 남북전쟁 직후 북군의 고든 그레인저 장군이 텍사스주에서 선포한 6월 19일이다. 2년 반 전 링컨의 노예해방은 노예제 찬성 일부 주에선 시행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