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조우석

국악기 중 거문고야말로 백악지장(百樂之丈), 즉 악기의 어른이다. 전시대에는 선비의 악기로 통했다. 탁하면서도 그 깊은 소리는 날창날창한 가야금과 사뭇 다른데, 둘 사이를 구분할 사람도 드무니 그것도 세상 탓이다. 그리고 서양악기 중에 백악지장이 있다면 단연 피아노인데, 고백하지만 내 경우 10대 시절부터 피아노에 빠져 지금도 요지부동이다. 바이올린-첼로보다 좋고 관현악, 실내악 장르의 매력과 또 다른데, 그렇게 벌써 반세기다. 그런 피아노 연주사의 시작은 의외로 짧다.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가 출발이다.

그 이후 연주사적 의미를 가진 음반을 거진 다 콜렉션했으니 갖다 바친 돈만 해도 과장하면, 집 한 채 값이다. 지금도 숨쉬듯 듣는 건 바흐의 건반음악으로, 거장 안드라스 쉬프와 로잘린 투렉 등의 연주로 듣고 또 듣는다. 여기에 나만의 사랑은 러시아 악파의 보석 사무엘 파인버그다.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너무 잘해 때려주고 싶다"고 털어놓았던 불멸의 발터 기제킹, 모차르트의 최고봉 릴리 크라우스는 또 어떠한가? 정신 나간 좌빨들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지 않으면 나 혼자 그렇게 즐기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 내게 귀가 번쩍 뜨이는 일이 생겼다. 반 클라이반 콩쿠르의 최연소 우승자 임윤찬 때문이다. 요즘 흔한 게 해외콩쿠르 입상자 소식이지만, 그는 차원이 또 다르다. 피아노광인 내 귀엔 가히 천재의 탄생이다. 국내파이고 그중 막내라던데 그가 하는 라프마니노프와 리스트 연주를 유튜브로 듣고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스타 조성진과도 대조적이다. 조성진이 사려 깊다면, 임윤찬은 화려하다. 즉 비르투오소적인데, 거기에 음악성까지 탄탄하니 그래서 가히 괴물이다.

야구에 비유하면 타율 4할대의 교타자가 홈런왕 타이틀까지 거머쥔 격이다. 리스트 연주전문가인 왕년의 라자르 베르만도 젊은 시절엔 결코 그만큼 못했다. 뭘 아는 이들의 표현대로 ‘개쩐다’. 거기에 임윤찬은 외모까지 멋지니 ‘콩쿠르 왕국’ 대한민국이 배출한 자랑스러운 이름이 맞다. 오늘 그에게 뜨겁게 박수를 보내는 건 너무도 당연하지만 분명한 건 콩쿠르는 음악의 출발점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결코 면허장이 아니다. 이미 내 마음 속의 젊은 거장인 그가 자신을 숙성시킨다면, 21세기 음악사의 자랑으로 성장할 것을 믿는다. 그에게 해줄 얘기도 많은데 나중에 기회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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