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찬
이범찬

국방부와 해양경찰청은 2020년 9월 서해에서 북한에 의해 피살·소각된 공무원 이대준 씨가 자진 월북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때의 입장을 180도 뒤집은 것이다. 유가족은 월북자 가족으로 낙인찍혀 지난 19개월 동안 창살 없는 공포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공포로부터의 자유는 기본 인권 중 하나인데 국가권력으로부터 심대하게 침해받았던 것이다.

동일한 정부기관이 ‘이제는 진실을 말할 수 있다’면서 손바닥 뒤집듯 하는 것을 보고, 국민들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은 이런 국가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되묻고 있다.

과연 국가란 무엇이란 말인가? 국가는 국민들이 법적 제약을 공유하면서 보호를 받고 권리를 주장하는 가장 큰 공적인 영역이다. 국가는 영사협약을 통해 국민들이 자기가 속한 국가를 벗어나서도 최소한의 보호나 권리를 향유하게 울타리를 제공한다. 또한 국가는 안전과 이익을 공유하는 배타적 집단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배타성을 발휘하고 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폭력을 관리하고 사용한다.

대외적으로 폭력을 사용할 때는 군대가 나서고, 대내적으로는 경찰을 통해 행사하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대내외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 한 국가의 자부심과 역량은 최종적으로 군대로 표현되고, 대통령은 군통수권자가 된다.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제일의 책무이다.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보고를 받았으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깨어나서 우선 군사적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대통령은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해 국민을 구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토록 지시하고, 군통수권자로서 경비정을 보내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강력한 의지가 있음을 매우 호전적으로 북한에 천명했어야 한다. 그리고 언론에 즉각적으로 공개해 북한이 잔인하게 죽일 수 없도록 조치를 했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은 군통수권자로 해야 할 역할을 방기했을 뿐 아니라 그 공무원에게 월북자 낙인을 찍었다. 대통령은 보고받고도 군당국에 어떤 지시도 하지 않았으며, 3시간이 지나 잔인하게 피격돼 사망·소각되게 놔뒀다. 대통령부부는 청와대에서 이 문제로 NSC회의가 개최되고 있는 시간에 한가로이 아카펠라 공연을 관람했다.

그럼 왜 이대준 씨를 월북자로 낙인찍었는가? 그로 인해 얻는 기대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우선 월북자로 처리함으로써 구출을 위한 강력한 대응이 불필요해서 북한과의 긴장을 조성할 필요가 사라진다. 문 정부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과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종전선언을 담은 유엔연설의 대북 효과를 극대화 하는데 목을 메고 있어 남북간 우호적 분위기 조성이 절실했다.

북한이 7.62밀리 기관총으로 사살하고 기름을 부어 시신을 태우는 만행을 저지른 것은 중대한 범죄행위다. 그에 합당한 응분의 조치가 있어야 하나 아무렇지 않게 넘어감으로써 김정은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다. ‘사람이 우선이다’라는 국정 슬로건을 내걸고도 국민의 인권보다 북한이 우선이었다. 정말 위선적이고, 내로남불을 넘어‘북로남불’이다. 청와대가 의도적으로 월북 처리를 지시했다면 월북조작이고 공작이며, 국민의 생명 보호가 국가의 기본 책무라는 본질을 망각한 국기문란 행위다.

고 이대준 씨 월북 여부를 두고 정쟁은 금물이다.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의 문제가 될 수 있고, 국가의 존재 이유에 답하는 본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야당은 신색깔론이다 첩보시스템이 붕괴된다 하면서 민생문제를 들고 나와 덮으려 하지 말고, 진실을 밝히는데 협조해야 한다. 이 문제는 인권이라는 본질적 가치의 문제다.도구적 가치가 몸통을 흔들어서는 안된다. 유족의 상처를 치유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잘못이 있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한 책임자 처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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