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이분법에서 탈피, 中洋의 시각으로 발상의 전환
오리엔트-중동이 인류 최초의 문명 싹틔운 뿌리임을 증명
超고대 아나톨리아 문명부터 오스만·무굴 제국까지 조명

 

이희수(68, 한양대 명예교수)의 <인류 본사>가 다음주(27일) 출간된다.

국내 최고의 중동 전문가이자 역사학자·문화인류학자인 저자를 따라 이슬람 문명권을 인류사 전체의 시각에서 살펴볼 좋은 기회다. 저자는 한국외국어대학교 터키어과 졸업 후 터키 이스탄불대학교에서 역사학으로 한국인 최초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학을 비롯해 터키 아나톨리아반도를 포함한 사우디아라비아·튀니지·이란·우즈베키스탄·말레이시아 등 이슬람권 전역에서 40년간 현장 연구를 해왔다.

저자에 따르면, 오리엔트-중동 지역은 산업혁명이 일어나기까지 약 1만 2000년간 인류의 진보를 주도해 온 역사의 중심축이다. 6400km 실크로드를 따라 동양 서양의 정치·경제·문화를 이어주며 교류 발전을 주도한 문명의 핵심 기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인류사를 ‘서양’ ‘동양’으로 갈라 그중에서 서양의 역사를 중심으로 인류의 발자취를 살핀 기존의 세계사는 정작 인류문명의 뿌리를 간직한 오리엔트-중동을 철저히 외면해왔다. 그 결과 우리는 오늘날 인류사회를 싹트게 한 이 지역의 역사·문화에 관해 무지한 채 불균형하고 편향된 ‘반쪽’ 역사만을 배우며 재생산해왔다.

‘서양’ ‘동양’을 넘어 ‘중양’의 눈으로 역사를 다시 읽는 것이야말로 인류문명의 완전판을 소화하는 획기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기원전 1만 년 초(超)고대 아나톨리아 문명부터 히타이트·프리기아 등 고대 오리엔트 문명과 7세기 이후 이슬람 왕국들의 역사를 거쳐 근대 오스만·무굴 제국 흥망까지의 인류사적 발자취를 정리한 이 역작을 통해, 저자는 오리엔트-중동의 역사를 인류의 뿌리 역사 즉 ‘본사(本史)’로 선언한다.

인류사회의 시원 ‘중간문명’, 동·서 교류 및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끼진 이 지역 15개 제국 및 왕국의 역사를 새롭게 총정리했다. 최초의 인류문명이 발아 성숙해 온 중심 무대, 동·서양을 아우르는 ‘중간문명’ 1만 2000년의 대서사, 인류사의 재구성이다.

‘서양사’ ‘동양사’ 구분에 우리는 너무나 익숙해 있다. 그리스·로마에서 출발해 중세-대항해시대-르네상스-종교개혁을 거쳐 산업혁명과 근대문명으로 귀결되며, ‘서양사’가 ‘세계사’ 이름을 독점했다.

그리고 동·서양 균형을 내세워 인위적으로 육성된 게 ‘동양사’다. 그나마 동양사는 중국사 중심, 그 외는 지역사·변방사 등 비주류 역사 취급을 당해 왔다. ‘동양 서양이 완전히 분리된 채 전개’된 것처럼 생각해왔고, 근대 들어 ‘서양이 동양을 개화시키며 융합됐다’ 식의 설명을 당연시해 왔다. 실제 사실과 동떨어진 인식이다.

서양의 문명·문물은 서양에서 기원하지 않았으며, 동·서양은 인류사 태동 이래 교류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서양과 동양을 촘촘히 이어준 ‘중간문명’, 더 거슬러 올라가 인류문명 자체를 탄생시킨 ‘중심문명’이 분명하게 존재했던 것이다. 바로 ‘오리엔트-중동’이었다.

‘오리엔트’란 ‘해 뜨는 곳’을 의미하는 라틴어 ‘오리엔스(Oriens)’에서 유래한다. 아나톨리아반도(현 터키공화국의 일부)를 중심으로 인류 최초의 문명을 싹틔운 역사의 본토를 가리킨다. 중동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기반으로 신화·문자·정치·기술 등 인간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온갖 문물을 창조해낸 문명의 요람이었다.

현지 유적지를 두루 직접 다녀온 저자의 답사기도 곳곳에 실려 있다. 실제로 접하기엔 현실적 제약이 많은 중간문명 제국들의 문화적 향취가 오롯이 재현된다. 문화인류학자다운, 상대주의적이며 현지중심적 관점을 공유할 수 있다는 매력 또한 중요하다.

200여 장에 달하는 컬러 사진과 지도 또한 현지에 있는 듯한 생생함을 잘 전달해준다. 생소하던 오리엔트-중동 문명을 국내에 제대로 알리고자 평생을 바친 저자의 기념비적 성취라 할 만하다.

찬란했던 티무르제국의 도시문화를 보여주는 사마르칸트 전경. 정면에 샤이진다의 묘당 중 하나가 보인다. /휴머니스트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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