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위기 책임론 강력 주장...러 해상 봉쇄로 곡물 수출길 막혀
흑해 인접 이집트 등 5곳 직격탄...AU의장 "러 곡물, 제재 예외돼야"
中도 아프리카에 적극 손 내밀어...호감도·영향력 미국 제치고 1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흑해를 통한 밀 수출이 막히면서 아프리카 전역의 식량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소말리아 등 일부 국가들은 밀의 90% 이상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로부터 수입해왔다. 사태는 점점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사진은 2013년 1월 22일 말리 중부지역 세구 근처 들판에서 밀을 체로 치는 말리 여성들. /AP=연합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흑해를 통한 밀 수출이 막히면서 아프리카 전역의 식량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소말리아 등 일부 국가들은 밀의 90% 이상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로부터 수입해왔다. 사태는 점점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사진은 2013년 1월 22일 말리 중부지역 세구 근처 들판에서 밀을 체로 치는 말리 여성들. /AP=연합

"아프리카는 우리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자들의 사실상 볼모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아프리카연합(AU) 대상 연설을 빌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아프리카가 인질이 됐다고 역설했다. 러시아의 해상 봉쇄로 우크라이나 곡물(약 2500만t) 수출길이 막히면서 아프리카 대륙에 기근 공포가 가중돼 왔다.

특히 나이지리아·소말리아·에티오피아·이집트·예멘 등 5곳은 우크라이나 전쟁발 식량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은 흑해와 인접해 있어, 분쟁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오랜 내전, 40년 만에 최악의 가뭄, 게다가 국제원조까지 감소하면서 2011년 식량위기에서 비롯됐던 ‘아랍의 봄 재현’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아프리카연합(AU) 의장인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은 ‘러시아에 굴욕감을 줘선 안 된다’고 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발언을 지지하고 나섰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식량을 무기화한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있음을 보여준다.

살 대통령은 19일 프랑스 주간지 ‘르 쥬르날 뒤 디망셰’와 인터뷰에서 "국가의 수장이 감정으로만 움직여선 안 된다.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며, 러시아와 협상하는 게 자신의 의무라고 힘주어 말했다.

살 대통령은 "아프리카 곡물·비료 공급을 위한 논의가 꼭 필요하다", "러시아산 곡물과 비료 구입대금 지급을 대러 제재의 예외로 인정해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유럽연합(EU)이 비(非)EU 국가에 대한 러시아산 곡물 및 비료 수입 자체를 제재하진 않았지만, 러시아 주요 은행을 국제 금융결제망에서 퇴출해 정상적인 거래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기근 때문에 아프리카가 불안정해지는 것은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의 결과 만큼이나 중요한 사태"라고 살 대통령은 거듭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아프리카로 적극 손을 뻗고 있다. 2월 임명된 쉐빙(薛氷) 중국 특사가 20일 중국 주도로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아프리카의 뿔’(대륙 동북부) 지역 평화 콘퍼런스에서 분쟁의 중재 역할을 맡겠다고 밝혔다.

에티오피아 등이 자리한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강화하며 분쟁으로부터 자국의 투자사업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중국에겐 세계 패권 전략의 상징성을 가진 지역이기도 하다.

중국은 식민지를 경영했던 서유럽 국가들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며, 아프리카의 호감을 사고자 노력해 왔다. 올해 아프리카 청년을 대상으로 한 주요국의 영향력과 호감도 조사에서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가 시행된 지 9년만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이츠코위츠 가족 재단’이 13일 공개한 ‘2022년 아프리카 청년 세대(아프리카 15개국 4500여명 조사)’ 보고서를 보면, 영향력 정도가 중국·미국 각각 77% 67%로 나타났다. "다른 국가들이 아프리카 개발에 거의 참여하지 않을 때 중국은 꾸준히 했다"는 게 재단 측 설명이다.

스리랑카처럼 본격적 대규모 프로젝트가 아직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에 의한 구체적 폐해도 발생하지 않은 것뿐이라는 반론도 있다. ‘제값을 치르지 않고 아프리카의 자원을 가져간다, 자국 본토로부터 대량의 인력을 조달하는 중국이 현지인들 일자리를 빼앗는다, 경제적 식민지화의 우려, 대출을 상환하기 어렵다’ 등의 우려 또한 다수 감지됐다.

자본이 부족한 국가들 중 일대일로 사업을 받아들였다가 ‘중국 빚의 덫’에 빠지는 경우가 속출해 왔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29일 화상으로 열린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FOCAC) 8차 장관급 회담 개회식에서 연설하는 시진핑 중국 중가 주석. 이 자리에서 그는 백신 6억 회분을 아프리카에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AP=연합
작년 11월 29일 화상으로 열린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FOCAC) 8차 장관급 회담 개회식에서 연설하는 시진핑 중국 중가 주석. 이 자리에서 그는 백신 6억 회분을 아프리카에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AP=연합
아프리카를 순방 중인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왼쪽)이 1월 6일(현지시간) 케냐 몸바사에서 레이첼 오마모(오른쪽) 외무장관과 양자 회담 전 팔꿈치 인사를 하고 있다. 중국은 외교부장이 새해 첫 방문지로 아프리카를 택하는 전통을 30년 넘게 고수해 왔다. /AFP=연합
아프리카를 순방 중인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왼쪽)이 1월 6일(현지시간) 케냐 몸바사에서 레이첼 오마모(오른쪽) 외무장관과 양자 회담 전 팔꿈치 인사를 하고 있다. 중국은 외교부장이 새해 첫 방문지로 아프리카를 택하는 전통을 30년 넘게 고수해 왔다. /AF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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