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권
허성권

SK그룹 입사를 예고하고 있는 박태서 전 KBS보도본부 시사제작국장(일요진단 앵커)이 2017년 9월 21일 KBS의 사내게시판에 올린 글이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박근혜정권이 탄핵으로 무너지고 문재인정권이 들어서자 기자정신과 저널리즘을 강조하며 고대영 사장 퇴진을 요구한 바 있다.

당시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는 전 고대영 KBS 사장의 해임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기자들을 대상으로 적폐몰이를 주도했다. 특히 ‘파업에 중립은 없다’ "언제까지 부역할 것인가? 부역을 넘어서 이제는 적극적인 공범자로 자처하려는가?" "끝까지 부역자와 공범자로 남는다면 개혁의 KBS에 그대들이 설 자리가 있겠는가?" 등의 표현을 써가며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정상적인 업무를 하던 기자들을 협박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태서씨가 앞장을 섰다. 그는 ‘남아있는 보직간부들에게...아직 늦지 않았습니다’라는 글을 게시판에 올리면서 제작거부와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보직자와, 해외지국장, 논설주간, 앵커 등 78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적시하면서 정치적 선택을 강요했다.

그는 "이번 제작거부와 파업에 중립은 없습니다. 고 사장 ‘퇴진’이냐, 아니면 ‘지키기’냐 둘 뿐입니다"라고 적으며 파업 동참을 호소했다. 이어 다른 성명서에서도 "언제까지 부역할 것인가? 부역을 넘어서 이제는 적극적인 공범자로 자처하려는가?"라면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부역자’와 ‘범죄자’로 몰아세웠다.

당시 ‘박태서 명단’에 포함된 사람들을 사내 게시물 게시와 함께 시작된 따돌림과 겁박 때문에 극심한 심적 고통과 압박을 받았다. 또 실제로 여기에 이름이 오른 부장급 이상 직원들 가운데 98%가 보직이 박탈되었고 팀장급까지 포함할 경우 92%가 박탈됐다. 현 김의철 KBS사장은 2017년 박태서 앵커가 올린 글에 연명하면서 글의 내용에 동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보도본부장이 된 김의철 KBS 사장은 실제로 인사권을 장악한 뒤 무자비한 파업불참자 좌천 인사를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파업불참자’나 ‘파업참가자’를 명단화하여 집단적 이익을 주거나 불이익을 주는 일을 우리는 ‘블랙리스트’라고 부른다. 노동법에서는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하고 공직자의 경우 직권남용 등으로 처벌하는 중요한 범죄다. 하지만 아직 권력을 잡지 못한 자가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뒤에 권력을 잡은 뒤 불이익을 주는 행위는 법의 경계선상에 있어서 지금껏 제대로 처벌되지 못해 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행위가 후진적이고 저열한 정치탄압이며,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정치탄압이 노노간의 극한 대결 양상을 띤다면 그 사회나 기업은 미래가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일에 앞장선 박태서씨를 현재 대기업 SK에서 데려가 도대체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것인가? 미래에 정권이 바뀔 때를 대비해 ‘보험’을 들어놓는다는 것인가?

후진적인 블랙리스트도 문제이지만 블랙리스트 작성에 앞장섰던 인사를 검증도 없이 데려가 쓰는 재벌가의 해묵은 스카웃 행태도 이 사회에서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앞으로 KBS노동조합은 이른바 박태서 블랙리스트 사건을 감사원 국민감사나 수사기관 고발을 통해 진위를 밝혀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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