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남긴 의사 주보선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남긴 의사 주보선 | 김민철 지음 | IVP | 300쪽 | 18,000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남긴 의사 주보선 | 김민철 지음 | IVP | 300쪽 | 18,000원

많은 선교사가 근현대에 한국으로 와서 복음을 전파하고 여러 사역을 감당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 우리는 그들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감사한다. 그러나 책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남긴 의사 주보선’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세상의 눈으로는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한 의료선교사의 삶과 유산에 관한 이야기다. 

그의 이름은 주보선.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의사가 됐고, 1967년부터 1988년까지 한국의 전주 예수병원에서 선교의 삶을 살았다. 주보선은 영웅적인 선교사도 아니었고, 영향력 있는 설교자도 아니었다. 조그만 병원이라도 지었다거나 그럴듯한 프로젝트를 수행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세상은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남겼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그를 기억하는 제자들이 있다. 그의 어떤 모습이 제자들의 가슴에 잔잔하면서도 평생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을까. 책은 주보선의 삶의 조각들을 찾아 모으고 이어서 엉성하게나마 그의 생애를 그려 봄으로써 열악했던 한국의 의료 여건에 맞춰 가르치고 전파하고 고치는 일을 하면서 ‘삶으로서의 선교’를 몸소 실천한 그의 삶을 그리고 있다.

1부 ‘나의 인생 이야기’는 주보선이 영어로 쓴 자서전을 그의 제자이자 책의 저자인 의사 김민철이 번역한 것이다. 주보선은 자서전에서 “우리 자녀와 손자들이 우리의 뿌리를 알고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엄청난 은혜를 베푸셨는지 알았으면 해서 가족의 역사를 기록한다”고 밝혔다.

요직에 올랐던 아버지를 비롯하여 중국이 변화와 혼란의 소용돌이를 지나던 시절 속 드라마같이 펼쳐진 가족 이야기를 시작으로 유년기와 청년기를 회고하고, 중국 정권의 변화로 가족 전체가 도망치듯 미국으로 건너간 후 의사가 되어 선교사로서 한국에 오게 된 이야기, 한국에서의 삶과 은퇴 이후의 생활까지를 주보선은 담담하게 기록한다. 

그의 삶을 이루는 배경들은 변화무쌍했고 굴곡도 많았지만,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는 일에 기복이 없었던 그의 삶처럼 그의 글도 차분하기 그지없다. 독자들은 이 자서전을 통해 주보선의 삶의 맥락과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2부 ‘그의 인생 이야기’는 주보선의 제자인 의사 김민철이 직접 쓴 글이다. 주보선의 삶이 다른 의료선교사와 어떻게 달랐는지, 그의 아름다운 삶과 영향력이 지금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면밀히 서술한다. 저자는 “출세와 성공과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눈에는 어쩌면 실패한 인생일 수도 있는 주보선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어떨까?”라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그리고 이 질문은 우리 자신에게 ‘우선 멈춤’의 신호를 보내며 ‘내 삶을 어떤 관점으로 조망할 것인가’ 하는 성찰의 자리로 이끌 것이다. 
 
주보선에게는 성취 지향적으로 앞만 보고 달리던 젊은 의사들을 잠시 멈춰 서게 하는 묘한 힘이 있었다. 그것은 웅변적 설교가 아니라 바로 그의 삶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제자들에게 삶의 본질을 놓치지 않도록 일깨우는 잔잔한 울림이 되었던 주보선의 삶은 이미 오래전에 의료적 삶 속에서 ‘삶으로서의 선교’가 무엇인지를 직접 보여 주는 것이었다. 주보선의 삶은 그에게 직접 배운 제자들뿐만 아니라 그를 알지 못하는 후배 의사들에게도 그리스도의 향기로 전달되어 예수를 따르는 수많은 제자를 낳았다.

주보선은 무엇보다 선교적 삶을 사는 제자들을 남겼다. 업적을 중시하는 세상에서 관계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제자를 남겼다. 환자를 대상화하지 않는 태도로 일하는 많은 제자를 남겼다. 그의 삶에는 조금 못 미칠지라도 그의 단순한 삶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제자를 남겼다. 지금 여기 일상의 삶에서 선교적 삶을 사는 많은 제자를 남겼다. 그리고 그의 삶은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을 계속 펼치고 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남긴, 그리스도의 참 제자다운 삶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주님께 헌신한 앞선 이들의 삶에서 도전받고 싶은 그리스도인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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