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학생의 돈오점수(頓悟漸修)
어떤 학생의 돈오점수(頓悟漸修)
  • 최성재 교육문화평론가
  • 승인 2019.01.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전사고를 깊은 자아성찰의 계기로 삼아 스스로 환골탈태한 후 꾸준히 노력하여 멋진 청년이 되어 옛 담임을 찾아온 학생 이야기]

휴대폰이 보급되기 전 삐삐가 대학생의 필수품이던 시절, 신목고 3학년 교무실의 전화가 요란스레 울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재필입니다.”

“아, 그래, 축하한다. 연세대 합격했다며, 전공은?”

“상경계열입니다. 오늘 언제쯤 찾아뵐까요?”

“오후 시간은 다 비니까, 12시쯤 보자.”

신목고에서 연세대 합격하는 건 별 뉴스거리가 아니었지만, 재필의 과거를 아는 사람은 그건 단연 화제거리이자 자랑거리였다. 나는 재필의 2학년 담임이어서 그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소상히 알고 있었다.

재필은 몸도 날렵하고 인물도 번듯하고 눈에 총기도 흘렀지만, 사교성까지 좋았지만, 살짝 허풍기가 있는 별 시답잖은 학생이었다. 서울대 출신의 아버지와 명문대 출신의 어머니 슬하에 누나들(내 기억으로는 3명)도 명문대를 졸업했거나 재학 중이었는데, 귀한 아들은 고2가 될 때까지 싹수가 여전히 노랬다.

◇명문 집안의 대를 이을 재필이

마음만 먹으면 아버지의 모교는 몰라도 어머니와 누나들 정도의 학교는 언제든지 갈 수 있다고 여태껏 큰소리만 뻥뻥 치지 도무지 책상에 진득하게 앉아 있질 못한다고, 학기초 재필의 어머니가 학부모 회의에 온 김에 잠깐 면담하면서 걱정 반 하소연 반 섞어 아들의 아름답지 않은 비밀을 폭로했다. 당시 상황에서는 명문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에게 연세대 상경계열은 희망이 아니라 망상이었다.

한여름, 체육시간, 교실에 후다닥 조금 일찍 들어온 재필은 뒷문의 손잡이를 꽉 잡았다. 그러면 문을 잠그지 않은 상태에서 바깥에서 누군가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어야 하는데, 잠시 손아귀 힘을 겨루는 사이 땀을 줄줄 흘리며 여러 명이 문 뒤에 늘어서서 살짝 짜증내는 걸 즐기는 놀이였다. 서너 명만 이겨도 그날의 작은 영웅!

“누구야, 아직까지 이따위 유치한 짓거리야! 다들, 저리 비켜!”

그날따라 매우 더워서 그만큼 놀이가 더 재미있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반별 축구 대항에서 지고 씩씩거리며 뒤늦게 도착했을 수도 있었겠다만, 육척 장신에 힘도 세었던 K가 문을 발로 쾅 차면서 어깨로 확 밀어 버렸다.

순간, 악, 하면서 재필이 오른손을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엄지가 손목까지 접혀지는 대형사고!

연락을 받고 헐레벌떡 내가 달려갔을 때는 재필이 양호실에서 응급조치를 취한 후였다.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보기만 해도, 내 손가락이 부르르 떨리고 내 입이 절로 벌어지고 내 눈시울이 절로 뜨거워지는데, 철부지로만 알았던 재필은 너무도 차분한 표정으로 연신 내게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재필의 표정과 태도는 노숙한 철학자의 그것과 같았다. 사회적 모순이 쌓이고 쌓이다가 마침내 자연발화한 산불처럼 터진 혁명의 불에 활활 타오르는 1789년의 파리 샹젤리제(Champs-Élysées)가를 덤덤히 창가에 기대어 내려다보는 어떤 계몽주의 철학자의 표정과 태도가 재필에게 엿보였다. 순간 내 머릿속을 한 줄기 작은 빛이 지나갔다.

◇노숙한 철학자 같은 재필의 태도

기사와 상관없는 이미지

잠시 후 재필의 어머니가 자가용을 몰고 와서 학교 자매병원인 홍익병원으로 동행했다.

(나는 그때 운전면허조차 없었다. 2년간 노력했지만, 대여섯 번 떨어지고 마지막 면허 시험일에는 ‘쿵, 우지끈!’ 무면허 자동차 사고까지 내고 아예 포기해 버렸다. 고척동에서 제법 무거운 가방을 들고 한쪽 어깨를 삐딱하게, 내 딴에는 당당하고 씩씩하게 고척시장을 지나 칼산을 오르내리며, 56kg 날씬한 몸으로 칼바람 일으키며 여느 사람에겐 40분 걸릴 거리를 30분에 주파하여 출퇴근하고 있었다.

나는 남모를 깊은 자괴감을 세 가지 허접한 논리로 애써 무마시키고 있었다. 첫째, 생각은 고상하되 삶은 단순하게(High Thinking, Simple Living)! 둘째, 걷기 무한 예찬. 셋째, 작지만 위대하고 확실한 환경운동. 이게 얼마나 조잡하고 얄팍한 자기기만이었는지! 몇 년 후 신도시로 이사 가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운전면허에 도전하여 3번 만에 합격하자마자, 도합 5년 만에 운전면허를 따자마자, 넉넉히 1년의 여유가 있었건만, 그다음 날 바로 현금 보따리를 싸 들고 가서 엘란트라 한 대를 뽑았던 것이다.

그날은 마침 막내딸의 생일이었다. 국가 인구정책에 역행한다고, 셋째라고(우리 집은 재필네와 달리 첫째가 아들, 둘째·셋째가 딸) 태어날 때 의료보험 혜택도 못 받은 우리 집 귀염둥이는 옆집 아줌마에게 한 달 내내 자랑해댔다.

“아줌마, 영민이 아줌마, 우리 집 자가용은요, 엘란트라예요!”

고맙게도 영민이 엄마는 그때마다 맞장구를 쳐 주었다.

“아유, 그렇구나! 참 좋겠다~” )

공교롭게도 다음날이 기말고사 첫째 날이었다. 엄지는 직립인간(Homo erectus)이자 도구인간(Homo faber)이 생각하는 인간(Homo sapiens)의 생각을 구체화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부위라, 손의 기능 중 40~50%를 차지하는 부위라, 수술하기가 몹시 까다롭고 섬세하고 조심스러워 최소한 3일은 입원해야 했다. 일주일 동안 입원한다고 생각하라고 의사는 안타까워했다. 팔도 손도 가능하면 움직이면 안 된다고 했다.

출석 점검하고 출결사항을 칠판에 쓰려고 교실에 들어갔더니, 재필이 떡하니 앉아서 왼손으로 펜 습자 그리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재필은 싱긋이 웃기만 했다. 복도에서 서성거리던 재필의 어머니가 자초지종을 들려주었다.

재필은 《양들의 침묵》에서 주도면밀하고 잔인한 한니발을 감쪽같이 따돌리듯이 새벽에 간호사들이 저도 모르게 깜박깜박 졸 때, 뒷문을 열고 비상문을 살그머니 열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 탈출에 성공, 공중전화로 어머니를 불렀다. 그 전날 어머니한테 부탁해서 받은 책만 달랑 들고서! 집에서 환자복을 교복으로 갈아입고 등교한 것이었다.

◇병원에서 한니발처럼 탈출한 재필

그날 오후 나는 다시 병원에 찾아갔다. 한니발은 탈출에 성공한 자를 살인 리스트에서 지웠다며, 입원은 하되, 시험은 보게 해 주겠다며,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한니발이 도리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마취 전이나 마취 후나 여간 아프지 않을 텐데, 그저 아, 아, 감탄사를 몇 번 내뱉을 뿐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며, ‘엄지 척’!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불교 용어 돈오점수를 참 좋아한다. 문득[頓] 깨닫고[悟] 꾸준히[漸] 수행하고 수양하여[修] 마침내 해탈에 이른다는 말이 마음에 쏙 든다. 지적·인지적 깨달음과 달리 도덕적·종교적 깨달음(*)은 일회성으로 성인(聖人)의 경지에 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증자(曾子)의 일일삼성(一日三省)이 불교의 점수(漸修)에 해당한다고 본다. 공자의 맥을 이은 증자도 인습과 습관, 본능과 유혹으로부터 평생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하물며 나 같은 범인이야, 하루 다섯 번 자신을 돌아보아도 부족할 것이다. 이슬람교도가 하루 다섯 번 기도하는 것도 같은 취지라고 본다. 설령 어느 날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도, 알라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해도, 꾸준한 기도 없이는, 자아성찰 없이는 마음속을 증오 대신 사랑으로 가득 채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무시하면, 스님이 돌중이 되고 목사가 나일론 목사가 되고 사제가 붉은 사제가 된다. 또는 느닷없이 인류를 구원할 계시를 받았다거나 석가보다 크게 깨달았다며 혹세무민하는 해괴한 사교의 창시자가 되기 십상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깨달음을 4개로 분류하는데, 거기엔 위에 든 둘 외에 심미적·창조적 깨달음도 있고, 기술적·기능적 깨달음도 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 재필

YES24이미지
YES24이미지

재필은 유행가 가사로 말하면 ‘아픈 만큼 성숙’했고, 불교 용어로 말하면 돈오점수했다. 그 후로 말수가 원래 그리 많았던 것도 아니었지만 말수가 더 적어졌고, 행동거지가 신중해졌고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성적이 바로 쑥쑥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반에서 10등 정도 하던 학생이 3학년 말에는 전교 10등 언저리까지 꾸준히 올라갔다.

내가 재필에게 해 준 것은 실상 아무 것도 없다. 다만 담임으로서 당연한 의무라, 장난치다가 다쳤다는 사연은 굳이 기술하지 않고 안전공제회에 신청해서 치료비 일체를 받게 해 준 것과, 이제 철들었구나, 라는 말 한 마디밖에 해 준 게 없다. 재필 어머니한테는 지켜보라고, 명문 집안을 빛내면 빛냈지 부끄럽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아낌없이 칭찬했다.

재필과 학교 근방의 식당에서 삼치구이를 시켜서 두세 시간에 걸쳐 식사하면서 책도 소개해 주었다. 이제 대학에 가면, 배우고 익히고 연구할 방대한 지식과 정보의 새 포도를 당연히 새 가죽부대에 담을 건데, 헌 가죽부대를 새 가죽부대로 바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일깨워 주었다.

어떤 새 가죽부대에 담느냐에 따라 그것이 천사의 축제에 보내질 수도 있고 악마의 축제에 보내질 수도 있으므로, 학문의 방향이, 학문을 담을 그릇이 실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한강의 기적>을 제대로, 객관적으로, 아름답게 기술한 책을, 서울대 경제학과 송병락의 책을 몇 권 소개해 주었다.

스승의 날에 재필로부터 축전을 받았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gw2021@jayoo.co.kr

더 자유일보 일시 후원

“이 기사가 마음에 들면 후원해주세요”

  • ※ 자유결제는 최대 49만원까지 가능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