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


어미 거미와 새끼 거미를 몇 킬로미터쯤 떨어뜨려놓고
새끼를 건드리면 움찔
어미의 몸이 경련을 일으킨다는 이야기,
보이지 않는 거미줄이 내게도 있어
수천 킬로미터 밖까지 무선으로 이어져 있어
한밤에 전화가 왔다
어디 아픈 데는 없느냐고,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매사에 조신하며 살라고
지구를 반 바퀴 돌고 와서도 끊어지지 않고 끈끈한 줄 하나

손택수(1970∼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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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륜(天倫)은 하늘이 정한,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특별한 관계를 일컫는다. 동서양 고전철학은 상이하지만 이것만큼은 일치한다.

먼저 맹자(孟子)를 살펴보자. 순(舜) 임금의 아버지 고수(고수)가 살인을 했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라는 질문에 맹자는 이렇게 답한다. 순 임금은 헌신짝처럼 권력을 버리고 남몰래 아버지와 함께 인적 없는 바닷가로 가서 흔연(欣然)히 세상일을 잊고 살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다시 세상에 나올 것이다.

이렇듯 맹자는 법과 천륜의 딜레마를 명쾌하게 정리했다. 플라톤의 ‘향연’에도 이런 대목이 나온다. 소크라테스는 어느 날 살인죄를 저지른 아버지를 고발하기 위해 오늘날 경찰서에 해당하는 바실리우스로 향하는 청년 유티프로 우연히 만난다. 소크라테스는 아버지를 고발하는 게 하늘의 이치에 어긋나는 불경건한 행위라는 것을 삼단논법(三段論法)으로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아버지를 고발하는 유티프로에게 만약 윤리와 정의를 저울에 달 수 있다면 어떤 것이 더 무거울까 하고 묻는다. 결국 유티프로는 소크라테스에 설득당하여 경찰서 앞에서 발걸음을 돌린다. 천륜에 대한 이와 같은 사상은 라틴에 전달되었고, 오늘날 유럽을 가리키는 대륙법(大陸法)으로 이어졌다. 대륙법이 모법(母法)인 우리나라 형법은 직계존속은 직계비속의 범죄에 대해 고소·고발권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예컨대 정의감이 충만한 어떤 사람이 자신의 부모가 저지른 범죄를 고소하기 위해 경찰서나 검찰청에 출두해 고소·고발장을 내민다 하더라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천륜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천륜의 뜻을 모르거나 무시되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만약 인류가 멸망한다면, 그 원인은 핵전쟁이나 기후변화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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