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신
임명신

문재인 정부 시절의 ‘탈(脫)원전’은 정책오류나 통치행위 등으로 변명될 수 없을 것 같다. "세계적 경쟁력의 산업 부문 중 하나에 중대한 타격을 줬다"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존망과 직결된 결과를 낳을 결정이 ‘친환경’ ‘안전’의 이름으로 감행됐다. 대체 에너지로 내세워진 태양광은 ‘친환경’적이지도 ‘안전’하지도 않았다. 수십년 애써 가꾼 산림 곳곳을 흉물스럽게 한 태양광 패널들... 돈은 주로 중국이 벌었다.

탈원전을 끝까지 밀어붙힌 것은 ‘대통령’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재난 영화 ‘판도라’ 영향을 받았다" 류의 비판은 부적절하다. 이상주의적인 지도자가 범한 실책 정도로 치부될 위험성이 있다. 월성 원전 조기 폐쇄는 당장 관련 부품업체의 고사, 전문 인력의 유출을 불렀다. 몇몇 원전 기술국들이 경쟁력을 잃어 간 과정과 일치한다. 환경론자들 주장에 밀려 미국·일본에서 실제 벌어졌던 일이다.

21세기 우리의 탈원전은 이 산업을 신흥강자 중국에게 ‘갖다 바치는’ 꼴이었다. 고의성이 의심되며, 이 사태를 국가반역 내지 스파이 게이트 차원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문 정권 내내 비핵화는 ‘북핵 제거’와 무관해 보였다. 집요하게 남한의 핵 능력만 없애려 한 정황이 뚜렷하다. 2018년 판문점 회담 때 김정은에게 건네진 USB, 일요일 한밤중 삭제된 산자부 400 여 개 파일 등 생생한 충격을 남겼다.

원자력은 산업국가 대한민국을 만든 핵심 토대였다. 이승만 건국 대통령의 공이다. "머리에서 캐내는 에너지" 원자력을 위해 과학인재들을 미국 유학 보내는 등, 최빈국의 눈물겨운 20 여년 노력 끝에 1978년 첫 원전을 가동시켰다. 값싸게 대량 공급되는 전력 없이 산업화를 상상할 수 없다. 원자력은 필요할 때 ‘핵 무장’의 기초이기에 함부로 전수되지 않는다. 이승만의 혜안, 그가 구축한 한·미 관계 덕분에 우리의 원자력이 가능했다.

지난달 하순 재출간된 <에너지 국제정치학>은 탈원전이 얼마나 중대한 실책인지 체계적으로 논한다. 에너지안보 실무관료이자 직업외교관인 박준서(현 駐파키스탄 참사관)의 저서다. 문 정부의 탈원전을 겪으며 이 문제의 심각성이 한층 절실해졌기에 책을 재출간했다는 박 참사관은 "에너지공급이 국가의 생명선"이라는 것, 그런 시각으로 국가의 방향·정책을 결정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아울러 에너지를 매개변수로 한 공시적 통시적 관점에서 근대자본주의의 전개, 복잡한 국제정치를 심도 있게 해설해준다.

1인당 전력소비량은 그 나라 1인당 GDP에 비례한다. 박 참사관 말을 빌면, "비싼 전기란 단순 물가상승이 아니라 국가 자체의 퇴보를 의미한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당시 렉스 틸러슨 엑손모빌 최고경영자가 국무장관이 됐다. 서구 최대 석유회사인 엑손모빌은 (록펠러) 스탠더드 오일의 ‘적통’이라 할 수 있으니, 40년 이상 업계 주류로 일한 석유전문가가 국무장관이 된 셈이었다. 이례적인 일로 보였으나, 트럼프 정부 대외정책의 핵심 의제가 ‘에너지’였음을 말해준다는 지적이다.

경제학의 중심 매개변수가 ‘가격’이라면 정치학의 경우 ‘권력’이다. 우리는 ‘권력’ 자리에 ‘에너지’를 대입시켜야 할 시대를 살고 있다. 1·2차 세계대전 역시 에너지를 둘러싼 대결이었으며,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도 결국 ‘에너지가 초래한 국제정치’다. 에너지 수출로 힘을 비축한 푸틴은 바이든 정부의 에너지 및 중동 정책으로 용기를 얻었다. 조만간 공화당 정권이 등장해 셰일 채굴을 활성화하면 유가 하락을 피할 수 없다. 푸틴에게 ‘때는 지금’뿐이었던 것이다. 소련 해체 후 혹독한 혼돈과 쇠퇴의 시간을 보낸 러시아에게 다시 없을 설욕, 도발의 기회를 제공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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