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유혈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인가 야위어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한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박봉우(1934~1990)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이 시는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박봉우 시인의 데뷔작으로, 두 동강 난 조국의 현실을 날카로이 응시하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1연과 5연에서 수미상관 형식을 취한 것은 휴전상태의 위기감과 문제의식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천둥 같은 화산’은 하시라도 재발할 수 있는 전쟁을 암시하고, 3연의 ‘야위어가는 이야기’는 유혈 낭자한 비극이 멈춘 후 분단으로 고착화 되어가고 있는 답답한 현실의 토로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언제 한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다. 그날이 언제인지 모르지만 화산이 터지듯 전쟁이 또다시 발발할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다. 이렇듯 시인의 현실인식은 날카롭다.

‘휴전선’은 전후문학에 흔히 보이는 동족상잔의 비극적 상황묘사나 비참함을 고발한 여느 작품들 다르다. 말하자면 차별성이 있다는 뜻인데, 당시 시인들이 개인적 실존의 내면세계, 현실과 유리된 자연에 모던한 옷을 입힐 때 박봉우 시인은 민족분단의 현실을 직시했다. 심사위원들이 ‘휴전선’을 당선작으로 뽑은 것은, 당시 냉전이데올로기 대립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쪽으로 쏠리지 않은 채 분단문제를 시적 감수성으로 형상화했다는 데 높은 점수를 주었기 때문이다.

6·25전쟁 발발 72주년이 엊그제 지나갔다. 선조들이 피 흘려 지킨 자유민주주의를 굳건히 하고 민족의 번영을 위해 도약할 때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