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현지시간) 낙태권 보장 판례를 뒤집은 미 연방대법원 판결 직후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주의사당 건물 근처에서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AP=연합
24일(현지시간) 낙태권 보장 판례를 뒤집은 미 연방대법원 판결 직후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주의사당 건물 근처에서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AP=연합

미국 연방 대법원이 낙태를 합법화한 이른바 ‘로 對 웨이드’ 판결(Roe vs Wade)을 약 50년 만에 폐기했다. 생명존중의 정신을 되살리며 미국의 회복도 본격화됐다는 환영의 목소리와 함께, 거센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보수 대법원이 진두 지휘하는 정치 지형·권력 재편도 가시화될 전망이다. 낙태문제가 첨예한 사회적 이슈인 것은 기독교 국가로 출발한 미국 특유의 역사적 배경이 있다. 지난 수십년 미국 사회가 전체적으로 기독교적 가치관·세계관을 거부하는 쪽의 길을 걸어왔기에, 이번 결정이 남다른 상징성과 의미를 갖는다.

미국에서 ‘낙태권’이란 매우 정치적인 이슈다. 전통적 가족의 해체를 가속화시키려는 입장의 전략과 깊이 맞닿아 있어, 매우 첨예한 사상·이념적 논쟁거리기도 하다. 24일(현지시간) 보수파 대법관 6명 전원이 낙태 합법 판례의 번복에 찬성했고, 나머지 3명은 판례 유지를 지지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 시절 임명된 보수 대법관들의 존재가 주효했다. 연방대법원은 지난 1973년 ‘로 對 웨이드’ 사건을 통해 ‘여성의 낙태권 보장’(임신 약 24주 이전까지 낙태 허용) 판결을 내렸고, 1992년 ‘플래드페어런후드 對 케이시’ 사건으로 이를 재확인한 바 있다.

물론, 기존 판례가 뒤집혔다 해서 낙태를 갑자기 전면 불법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낙태권 존폐 결정이 각 주 정부 및 의회로 넘어갔을 뿐이다. 하지만 이 변화의 영향은 지대하다. 이에 따라 보수파가 장악한 주(전체 50개 주 가운데 절반 이상)는 즉각 낙태시술을 금하고, 낙태를 불법화하는 법률안 마련에 착수할 수 있게 됐다.

이날 판결문을 통해 "헌법은 낙태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지 않으며 헌법의 어떤 조항도 그런 권리를 보호하지 않는다", "로(Roe) 사건은 처음부터 터무니없이 잘못됐다. 유난히 약한 추론을 거쳐 도달한 결정이 해로운 결과를 가져왔다"고 연방법원은 밝혔다. 특히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분열을 심화시켰다. 이제 낙태문제를 국민이 선출한 대표에게 돌려줘야 할 때"라고 명시했다. 헌법적으로 보장된 권리가 아님을 분명히 한 것이다.

아울러 연방법원은 "향후 그리스월드·로런스·오버게펠을 포함한 앞선 판례들을 재검토할 것"이라며, 대대적인 판례 수정을 예고했다. 각각 피임·동성혼·동성 성관계 등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들이다. 한편, 전날엔 ‘개인이 공공장소에서 권총을 휴대할 수 있는 권리’도 인정됐다(보수 6 對 진보 3). 최근 법 집행 공무원이 ‘미란다 원칙’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소당할 수 없다는 판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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