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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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두 달 만에 데드크로스 와우. 이 어려운 걸 윤석열이 해냅니다."

한 머리 깨진 분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글이다. 저분이 신난 이유는 지난 22일 발표된 대통령 직무수행에 대한 평가 때문, 알앤써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평가는 긍정이 47.6%, 부정이 47.9%로, 잘못한다는 평가가 더 많았다. 소위 데드크로스가 일어난 것. 

윤석열 대통령이 잘못되기만을 바라는 좌파들로선 이번 결과가 기쁠 수밖에. 급기야 윗분은 다음과 같이 으스댄다. "윤석열 지지자들아. 보고 있나? 너희들이 그렇게 따르던 주인의 지지율이 이렇게 나와서 가슴이 찢어지겠다?" 이분의 환호에 실소가 나오는 건, 나는 물론이고 주변의 보수 지지자 대부분은 윤대통령의 지지율에 마음 상해하지 않아서다. 이게 단순히 정신승리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첫째, 좌파들은 무조건 ‘부정평가’를 한다. 대선은 all or nothing, 그러니까 이긴 사람이 모든 걸 갖는 싸움이다. 0.73%밖에 차이가 안 났다며 ‘졌잘싸’를 외쳐봤자, 현실은 달라지는 게 없다. 승자가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찬을 즐길 때, 패자는 방탄조끼를 입기 위해 출마한 계양을에서 자신의 꼼수를 실토해야 했으니 말이다. "정치란 있는 길을 가는 게 아니라, 없는 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이 광경을 바라보는 지지자들은 속이 쓰리다. 2017년 5월, 정권을 내준 보수층의 마음도 이와 비슷했으리라.

하지만 보수와 좌파가 갈라지는 건 이 지점부터다. 보수층은 새 대통령이 나라를 잘 이끌어주길 바라며, 잘한 일에는 잘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 후 100일째 역대 최고인 84%의 지지율을 기록한 비결이다. 반면 좌파는 윤대통령이 하는 모든 일에 트집을 잡으려 든다. 출퇴근 시간을 체크하고, 차량통제 때문에 길이 막힌다며 아우성을 치고, 5년 임기를 다 못 채울 것이라며 저주를 건다.

여론조사 기관이 전화해 ‘대통령 평가’를 부탁했을 때 ‘못하고 있다’고 답하는 건 필수다. 이러니 윤대통령이 취임도 하기 전인 3월 4주째,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나간다. "‘윤 당선인이 국정을 잘하지 못할 것’이란 응답이 49.6%로 ‘잘할 것’(46.0%)이란 대답보다 많았습니다." 이런 지지율에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둘째, 국민이 늘 옳지는 않다. 대통령은 국민의 뜻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는 게 맞지만, 필요한 경우엔 국민이 반대하는 일도 해야 한다. 예컨대 공공요금 인상을 좋아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요금을 올리지 않아 나라 살림이 어려워진다면, 국민을 설득해 요금을 올릴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지지율이 떨어지고, 다가오는 선거에도 영향이 있겠지만, 그게 무섭다고 요금을 동결해 국가부채를 증가시키고 후손에게 빚을 떠넘기는 건 무책임하다. 하지만 이건 지난 정권에서 상시로 벌어진 일이다.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전기세를 올리지 않았고, 건강보험의 혜택을 대폭 늘리는 ‘문재인 케어’를 시행하면서도 건보료 인상은 최소한으로 했으니 말이다. 덕분에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임기 말까지 40%를 넘는 고공행진을 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실패한 대통령’이란 사실이 부정되는 건 아니다. 지난 정권에서 저질러진 오류들을 바로잡고 내외적으로 어려운 경제환경에 대응하려면 윤 정부에선 더 많은, 인기 없는 정책이 필요하다. 당장의 지지율에 얽매이기보단 훗날의 평가를 더 신경 쓰자는 얘기다.

그렇다고 지지율을 아예 무시해선 안 된다. 무조건적인 지지나 반대를 자랑으로 아는 좌파들과 달리, 보수층은 사안별로 지지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금은 물러난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적절하다’는 응답은 겨우 24.7%에 불과했는데, 이는 3년 전 ‘조국사태’에서 조국에 대한 긍정평가가 줄곧 40% 이상이었던 것과 비교된다. 문 전 대통령은 결국 조국을 임명하며 몰락의 길을 걸은 반면, 윤대통령은 정호영의 자진사퇴를 이끌어 냈다. 6월 말의 데드크로스가 그리 걱정되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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