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기
홍성기

키치는 대중사회에서 고급문화를 동경하는 대중이 소비하는 예술품, 디자인 등을 의미한다. ‘키치(Kitsch)’는 독일어인데, 19세기 중반 뮌헨의 시장에서 파는 싸구려 미술품 등에 처음 사용되었다.

한국의 경우 ‘알프스의 산 밑에 초가집과 물레방아가 도는’ 풍경화, 흔히 ‘이발소 그림’이라고 부르던 것들, 호텔 내부에 마치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방한 벽화나 장식물, 아파트 입구를 장식하는 그리스식 기둥 역시 키치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대중이 고급문화에 참여하려는 심리에서 나온 일종의 복제품들이다. 만일 키치의 심리학이 있다면 짝퉁 혹은 명품 자체도 키치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와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대부분의 예술 장르에서 복제가 성행해 오리지널의 아우라가 사라진 20세기와 21세기에, 키치와 키치가 아닌 것을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점은 키치를 의도적으로 만드는 예술가들이 등장했고 이들의 작품을 ‘캠프(camp)’라고 부른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결국 키치도 개인의 기호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의 영역에서 복제의 성행은 전혀 다른 의미가 있다. 21세기 대중은 SNS와 인터넷, 유튜브 등을 통하여 서로 정치적 정보와 스토리 등을 복제·공유한다. 문제는 이들 복제하는 인간들이 패를 지어 서로 싸운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선거에 참여하는 것으로 민주시민의 역할을 다했다는 소극성을 벗어나, 이제 대중은 권력의 창출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바로 정보 공유를 통한 ‘권력 창출에의 참여’가 예술의 영역에서 키치의 심리와 흡사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중이 정보와 스토리 복제를 통한 권력 창출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기호로 끝나지 않는다. 정치적 키치는 나라를 엎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치적 키치의 특징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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