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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 연일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하면서 은행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금리 상승기의 ‘이자장사’를 경고하자 연 7%를 웃돌던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형) 금리가 다시 6%대로 내려온 것이 대표적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일 유례없는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를 우려하면서 "금리 상승기에 금융소비자의 이자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금융당국과 금융기관들이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이 원장이 은행들의 과도한 이자장사를 비판하며 가파르게 오르는 대출금리의 속도 조절을 주문한 것도 이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여당도 나섰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3일 고통분담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그동안 은행들이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로 과도한 폭리를 취했다는 비판이 계속돼 왔는데, 시장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출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것이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주택담보대출 혼합형 금리는 지난 24일 기준 연 4.75~6.515%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17일의 4.33~7.14%에 비해 1주일 새 금리 상단이 0.625%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4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변동형 금리는 24일 기준 연 3.69~5.781%로 한 주 전의 3.69~5.681%보다 금리 상단이 0.1%포인트 높아졌다. 신용대출 금리 역시 연 3.871~5.86%(1등급, 1년 기준)로 금리 상단이 0.35%포인트 올랐다. 은행들의 눈치보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들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지표금리가 오르고 있어 대출금리를 낮추는데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지표금리는 시장의 실세금리를 가장 잘 반영하는 3년 만기 국채와 은행채 금리 등을 말한다.

자금조달을 위한 은행채의 금리는 큰 폭으로 뛰고 있다. 1년 만기 은행채 금리는 지난 17일 연 2.91%에서 24일 연 3.14%로 0.23%포인트 올랐다. 은행들의 예적금 금리가 경쟁적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예적금 금리가 인상되면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도 오르기 때문에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다시 높아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의 이자장사, 특히 가산금리 산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출금리는 시장 상황에 따라 변동하는 은행채나 코픽스 등 기준금리에 개별은행이 자체적으로 조정하는 가산금리를 더해 산출된다. 가산금리는 리스크프리미엄, 유동성프리미엄, 신용프리미엄, 자본비용, 인건비·전산처리비용 등의 업무원가, 보증기관 출연료, 교육세 등의 법적 비용, 은행이 설정하는 마진율인 목표이익률,그리고 가감조정 전결금리 등의 항목으로 구성된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5월 전북은행이 취급한 신용대출의 평균 가산금리는 7.34%다. 이는 전월의 7.50%에 비해 0.16%포인트 낮아진 것이지만 전년 동월의 6.77%와 비교하면 1년 만에 0.57%포인트 높아졌다. 특히 신용대출 평균 가산금리가 제일 낮은 NH농협은행의 2.46%와 비교하면 3배나 높은 수준이다. 5대 시중은행 간 가산금리 차이 역시 1%포인트를 훌쩍 넘긴다. 하나은행의 신용대출 평균 가산금리는 3.79%로 NH농협은행의 2.46%보다 1.33%포인트 높다.

가산금리는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산정하는 데다 기준을 명확하게 공개하지 않아 일각에선 깜깜이 가산금리라고 부른다. 은행들이 이자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금융소비자들이 산정 기준을 알지 못하는 가산금리를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지표금리가 계속 오르고 있는 만큼 대출금리를 내리는 가장 빠른 방법은 가산금리를 조정하는 것"이라며 "가산금리 항목 중 영업점 전결이나 본부 승인으로 우대금리를 줄 수 있는 가감조정 전결금리 등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행들이 손쉬운 이자장사로 과도하게 이익추구 행위를 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억울함도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금리 인상기에 예대마진이 커지고 있는 것은 물론 가산금리 산정을 통한 이자이익 확대를 부인할 수 없는 만큼 경제 위기 상황에서의 고통분담 주문을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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