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경제부총리가 28일 마포구 경총에서 손경식 회장 등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28일 마포구 경총에서 손경식 회장 등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물가 오름세를 심화시킬 수 있는 과도한 임금 인상 자제를 주문하고 나섰다.

추 부총리는 28일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단과 조찬 간담회를 갖고 "최근 정보기술(IT) 기업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높은 임금 인상 경향이 나타나면서 여타 산업과 기업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는 등 우려스러운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추 부총리는 "소위 잘 나가는, 여력이 있는 상위 기업들이 성과 보상 또는 인재 확보라는 명분을 내세워 경쟁적으로 임금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계에 따르면 주요 대기업은 최근 노조와 임금·단체협상에 돌입하거나 일부는 마친 상태다. 삼성전자는 노사협의회를 통해 올해 평균 임금 인상률을 9%로 확정했다. 기본 인상률 5%에 성과 인상률 4%다. 이는 10년 내 최대 인상률이었던 지난해의 7.5%보다 1.5%포인트 높다. 이번 합의로 직원에 따라 최대 16.5%까지 임금이 오른다.

LG전자를 비롯한 LG그룹 계열사들도 올해 임금 인상률을 8~10%대로 확정했다. 카카오는 평균 15%, 네이버는 평균 10% 임금을 인상했다.

실질 경제성장률에 디플레이터를 더해 임금 인상률의 잣대가 되는 올해 경상성장률은 5.2%선으로 추산된다. 디플레이터는 모든 물가 요인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물가지수, 경상성장률은 명목 경제성장률을 의미한다.

하지만 대기업 노조들은 이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물가가 올라가는 ‘좋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경기는 위축되는데 물가 상승만 야기하는 ‘나쁜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대기업 노조의 과도한 임금 인상 요구는 하반기 한국 경제의 또 다른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물가 상승→임금 인상→고물가→소비 감소→경기 둔화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우리나라와 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 등 주요 5개국(G5)의 노동비용 증가 추이를 비교한 결과 지난 20년 간 한국 노동자의 평균 임금 상승률은 G5의 2배를 크게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노동생산성이 뒷받침되지 않아 물가 오름세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임금 근로자의 1인당 연간 평균 급여는 2000년 2만9238달러에서 2020년 4만1960달러로 43.5%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G5의 1인당 연간 평균 급여는 4만3661달러에서 5만876달러로 16.5% 늘었다. 우리나라의 임금 상승률이 G5 평균의 2.6배에 달하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인구가 3000만명 이상인 나라 11개국 중에서도 두 번째로 임금 상승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생산성은 역(逆)의 방향을 보이고 있다. 노동비용지수와 노동생산성이 공시된 2004년부터 2019년까지 우리나라 제조업 근로자의 1인당 노동비용은 88.2% 증가했지만 노동생산성은 73.6% 늘어나는데 그쳤다. 우리나라 제조업 근로자 1인당 노동비용 증가율과 노동생산성 증가율 간의 차이는 14.6%포인트로 G5의 평균 5.3%포인트보다 2.8배 높았다.

한국은행은 지난 4월 ‘최근 노동시장 내 임금 상승 압력 평가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물가상승률이 높은 시기에 노동비용이 더욱 쉽게 물가에 전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물가 상승→임금 상승→물가 추가 상승의 악순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추 부총리 발언으로 고임금발(發) 인플레이션이 화두로 떠오른 이날 최저임금위원회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제7차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노동계는 올해 최저임금 9160원보다 18.9% 올린 시간당 1만890원, 경영계는 동결을 최초 요구안으로 제시한 상태다.

도를 넘는 임금 인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 하지만 소비자물가와 공공요금이 치솟는 상황에서 저임금 노동자의 처지도 감안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높다. 최저임금이 오르지 않을 경우 저임금 노동자의 실질 임금은 마이너스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실질소득은 유지할 수 있는 최저임금 인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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