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에서 벗어나 고동비행을 준비하고 있던 항공업계가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3고(高)’에 다시 발목이 잡혀 성장동력이 상실될 위기에 처했다.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출국장. /연합
코로나19 사태에서 벗어나 고동비행을 준비하고 있던 항공업계가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3고(高)’에 다시 발목이 잡혀 성장동력이 상실될 위기에 처했다.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출국장. /연합
코로나19라는 지옥 같은 터널을 벗어나 힘찬 비상을 꿈꿨던 항공업계가 제대로 이륙도 못해보고 불시착할 위기에 처했다. 국제정세 불안이 촉발한 고유가·고환율·고금리의 ‘3고(高)’가 업계 내·외부에 거대한 난기류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항공사들은 국제선 운항 재계 등에 힘쓰면서도 이제 막 달아오른 여객수요 증가세가 꺾이지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28일 대한항공은 오는 9월까지 국제선 좌석 공급량을 코로나19 이전의 50%대로 회복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내달부터 미주·유럽·아시아 등 전 노선에서 증편 또는 운항 재개가 이뤄진다. 아시아나항공도 코로나19 기간 동안 좌석을 떼어내 화물기로 썼던 여객기를 복원하는 등 국제선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행 극성수기인 여름 휴가철의 폭발적 항공수요를 최대한 흡수해 경영정상화를 하루라도 앞당기려는 것이다.

이처럼 꽃길이 예상됐던 항공업계의 앞날에 최근 뜻밖의 암초가 나타났다. 고유가·고환율·고금리 기조가 그것이다. 이들 3고는 하나 같이 항공사의 수익성에 직격탄을 날릴 파괴력을 갖고 있어 갈길 바쁜 업체들의 한숨 소리가 커지고 있다.

3고 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고유가다. 고유가는 모든 산업에 악재로 작용하지만 항공업계의 타격이 가장 크다. 연료비가 항공사 매출원가의 30~40%를 차지하는 탓이다. 연평균 2800만 배럴의 항공유를 사용하는 대한항공은 유가가 배럴당 1달러만 올라도 360억원의 수익이 증발한다. 아시아나힝공의 피해도 130억원에 이른다. 그런데 이달 17일 기준 항공유값은 배럴당 177.08달러를 찍었다. 전년 동기 대비 128.9%, 전월보다도 20.8% 뛴 가격이다.

한국항공협회 관계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만 해도 올 1분기에만 작년 연간 연료비의 37%(6633억원), 34%(2919억원)를 각각 지출했다"며 "고유가가 장기화되면 항공사는 매출이 늘어도 수익은 악화하는 마이너스의 굴레에 빠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3일 원/달러 환율이 12년 11개월여만에 처음으로 1300원을 돌파하는 연일 치솟는 환율도 항공사의 재무건전성에 큰 위협이 된다. 항공사들은 막대한 유류비와 항공기 리스료를 달러로 지급해야 해 외화부채 상환 부담이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대한항공의 경우 순외화부채가 41억달러(약 5조3000억원)에 달해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410억원의 외화평가손실이 발생한다. 아시아나항공도 284억원 수준의 외화환산손실이 예상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환율이 오르면 해외영업에서 얻는 외화수익이 커지는 긍정적 효과도 있었지만 국제선이 정상화되지 않은 지금은 그나마도 기대하기 어렵다"며 "항공기의 리스 비중이 높은 저비용항공사(LCC)들은 그야말로 비상상황"이라고 전했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정부의 고금리 정책 역시 항공사에게는 성장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코로나19 기간을 버티기 위해 은행에서 빌린 돈에 대한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업계에 의하면 평균금리가 1% 상승하면 대한항공은 450억원, 아시아나항공은 328억원의 이자비용이 추가된다. 한국은행이 올 연말까지 4차례 더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 항공업계 전체의 추가 이자부담은 1000억원을 웃돌 전망이다.

특히 3고는 여행 심리를 위축시켜 항공수요 회복에 제동을 걸 개연성도 높다. 물가가 잡히지 않으면 사람들은 지출을 줄이게 되는데 항공사는 오히려 손실보전을 위해 항공료·유류할증료 등으로 비용을 전가해야 하는 까닭이다. 수요는 줄고 가성비는 나빠지는 것이다. 이미 국제선 항공료에 부과되는 유류할증료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내달에는 이번 달보다 3단계나 오른 22단계(거리별 4만2900∼33만9300원)가 적용돼 5200∼4만5500원의 고객 부담이 늘어난다.

한국항공협회 관계자는 "항공사들은 유가 선도계약을 통해 유가 변동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지만 3고 자체가 대외적 요인이라 자구책만으로는 해결이 불가한 실정"이라며 "봄기운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혹한이 찾아온 것 같아 한숨만 나온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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