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악원, 9월 25일까지 '바람에 바람을 싣다' 기획전

 
 
국립국악원 기획전시 ‘명인 명창의 부채-바람에 바람을 싣다’.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오정숙 명창, 이매방 명인, 남해안별신굿, 정순임 명창의 부채. /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 기획전시 ‘명인 명창의 부채-바람에 바람을 싣다’.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오정숙 명창, 이매방 명인, 남해안별신굿, 정순임 명창의 부채. /국립국악원

29일부터 국립국악원 기획전시 ‘명인·명창의 부채-바람에 바람을 싣다’가 열린다(9월 25일까지 국악박물관 기획전시실).

판소리·전통춤·연희(演戱)·무속 분야의 명창 명인 58명의 부채 80 여 점이 전시된다. 모두 글·그림, 사연을 담고 있다. 전통예술에서 부채는 ‘필수 소품’이다. "명인 명창들의 이상, 예술에 임하는 마음가짐, 예술의 경이로움을 경험할 특별한 전시가 될 것"이라고 서인화 국악연구실장이 말했다. 국립국악원은 전시와 관련된 연계 특강도 8월부터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 전시명의 붓글씨는 한글서예가로도 이름난 소리꾼 장사익이 썼다.

전시품 모두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접부채들이다. 부채의 역사는 아득하지만, 12세기 이후에야 접부채로 발전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실용성과 다른 차원의 ‘필수적’ ‘심미적’ 세계를 구축한 물건의 미학을 느껴보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다. 접부채는 동아시아에서 널리 유행했고 서양에 전파됐다. 실크로드로 건너가 서양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서구 영화 속 무도회 장면에서 귀부인들 저마다 손에 쥔 소지품이 접부채다. 접부채가 특정 몸짓과 함께 또 다른 언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접부채는 몇몇 문헌·유물을 근거로 ‘일본 기원설’이 우세하다. 고려 기원설도 있지만 출토된 유물이 없고 문헌 연대는 일본에 뒤진다. 어쨌든 접부채의 기원, 대나무 속살을 얇게 깎아 만든 부채살 위에 헝겊이나 종이를 얹은 부채가 동북아 발명품인 것만은 분명하다. 선풍기나 에어컨이 상용화되면서 부채의 실용성은 사라지고 점점 특수 소품, 작품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일부 무형문화재들이 작품의 고급화를 시도해 왔다. 이번 전시에 나온 부채들 대다수가 그렇다.

판소리 명창 채수정(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의 부채는 서예가인 부친 채원식에게 받은 것이다. ‘淸風明月本無價’(청풍명월본무가)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본래 값이 없다’ 즉 ‘공짜로 무한히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좋은 소리를 많은 이들에게 들려주길 바라는 부친의 마음이 담겼다. 유영애 명창의 부채엔 심청가의 한 대목, 秋月滿情(추월만정) 가사가 실려 있다. 그녀의 심청가를 직접 들은 서예가 유기원이 부채에 써서 선물한 것이다.

명인 명창과의 교유가 많기로 유명한 김영철 화백 작품은 여러 개다. 김 화백이 살풀이춤·승무 예능보유자 故 이매방 선생의 춤을 보고 학을 그려 선물한 부채가 있다. 故 오정숙 명창의 경우, 김 화백으로부터 받은 사슴 그림의 부채 두 개를 이일주·김소영 명창에게 하나씩 물려줬고, 이일주 명창의 부채는 그 제자인 장문희 명창에게 계승된다.

줄타기 김대균 명인은 스승인 故 김영철 명인으로부터 물려받아 부챗살을 손수 고쳐가며 사용해 온 부채를 전시에 내놨다. 김온경 명인이 승무를 추는 모습을 그려 선물한 동래야류 예능보유자 천재동의 작품도 있다. 한량무의 대가 故 임이조 명인은 자신의 춤을 보고 누군가 ‘鶴舞鶴’(학무학)이라 써준 부채를 내놨다. ‘학이 학춤을 추다’, ‘춤추는 게 학 같다’는 얘기다.

명인 명창들이 오랜 세월 소중히 해 온 부채들도 만날 수 있다. 신영희 명창은 소리 인생 70년을 함께 한 부채 중 닳아 못 쓰게 된 24점을 모아 8폭 병풍에 담았다. 남해안별신굿보존회가 내놓은 것은 큰무당 故 유선이(1881~1952) 명인이 사용한 후 대대로 이어져 온 100년 넘은 접부채다. 남해안별신굿에선 무당의 부채를 이상세계의 바람을 담아 사람들의 안녕·행복을 기원하는 도구로 여긴다.

故 정재만 명인은 창작무대 ‘청풍명월’ 첫 공연에 쓸 부채의 그림을 직접 고안했다. 그렇게 탄생한 부채를 지금껏 제자들이 사용 중이다. 정순임 명창은 유관순 열사가(歌)로 유명한데, 그 때 사용하는 무궁화 그림의 부채를 전시에서 볼 수 있다.

국립국악원 기획전시 ‘명인 명창의 부채-바람에 바람을 싣다’가 어제부터 열리고 있다(9월 25일까지 국악박물관 기획전시실). /국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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