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Mann Act 위반 모함

David Fields, NARA 문서확보 도움
임시대통령 이승만·독립운동가 김노디
구미위원부·한국친우회 활동 마치고
하와이로 가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이동
기차의 서로 다른 칸 위층 침상 사용
각기 다른 사진에서 오려낸 범죄인 모습
‘무혐의’를 ‘기소’로 조작·날조
한국친우회 서기 ‘구타펠’의 시기?

류석춘
류석춘

미국 동부를 주 무대로 활동하던 이승만은 1919911일 통합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상해로 부임하는 일정을 미루고 있었다. 임시정부 산하 기구로 스스로 워싱턴에 설치한 구미위원부’ (The Korean Commission to America and Europe) 가 외교와 선전 활동은 물론 독립공채 발행 등 재정적인 업무를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1920년 3월 1일 워싱턴 포틀랜드 호텔에서 찍은 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직원 일동의 3.1절 1주년 기념사진. 점선 안의 앉은 사람이 이승만 (45살), 선 사람이 김노디 (22살) 이다. 이승만의 왼쪽은 송헌주, 오른쪽은 김규식이고, 김노디 왼쪽은 임병직이다 (출처: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민족문제연구소의 영상 ‘백년전쟁, 두 얼굴의 이승만’은 이 사진에서 김노디를 오려내서 아래와 같은 범죄인 사진으로 둔갑시켰다. 사진 아래쪽 사건번호 역시 조작이다.
1920년 3월 1일 워싱턴 포틀랜드 호텔에서 찍은 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직원 일동의 3.1절 1주년 기념사진. 점선 안의 앉은 사람이 이승만 (45살), 선 사람이 김노디 (22살) 이다. 이승만의 왼쪽은 송헌주, 오른쪽은 김규식이고, 김노디 왼쪽은 임병직이다 (출처: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민족문제연구소의 영상 ‘백년전쟁, 두 얼굴의 이승만’은 이 사진에서 김노디를 오려내서 아래와 같은 범죄인 사진으로 둔갑시켰다. 사진 아래쪽 사건번호 역시 조작이다.

안정적 수입 없는 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이승만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미주에 있는 교민들을 상대로 안창호의 대한인국민회가 관행적으로 거두고 있던 애국금모금을 이승만은 상해의 임시정부와 협의해 구미위원부독립공채를 판매하는 것으로 대체하도록 결정했다. 19203월이었다. 물론 구미위원부 활동이 독립운동의 자금 문제에만 국한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구미위원부의 외교적 선전 노력이 성과를 낸 대표적 사례는 한국의 독립촉구 결의안이 미국 상원에 상정된 일이다. 아일랜드와 함께 상정된 독립촉구 결의안에 대해 미 상원은 1920317일 서로 다른 결정을 했다. 아일랜드 안은 38:36 통과, 한국 안은 34:46 부결이었다 (김학은, 2017, 이승만과 데 발레라연세대 출판문화원, p. 190, 551). 그러나 이승만은 실망하지 않았다. 독립을 얻기 위한 기나긴 외교활동의 첫 경험일 뿐이라 생각했다.

구미위원부 활동이 궤도에 오른 것을 확인한 이승만은 상해로 가는 일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승만 일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당시 일정을 살펴보자. 이승만은 192067일 필라델피아를 찾아 서재필을 방문하고, 614일 오벌린 대학 재학 중인 김노디, 김신실, 주영순 등을 클리블랜드에서 상봉한 다음, 616일 기차로 시카고를 출발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서, 622일 하와이로 가는 마노아 (Manoa) 호를 탔다. 하와이에 도착한 이승만은 상해로 가는 준비에 착수했다.

바로 이 시점에서 발생한 사건이 이승만의 만 액트 (Mann Act) 위반 혐의. 20121210일 민족문제연구소가 유튜브에 공개한 53분 남짓한 분량의 영상 두 얼굴의 이승만’ (백년전쟁 Part 1) 은 이승만이 이 법률에 따라 조사받고 기소되었으나 배심원들을 회유해 풀려 났다고 비난했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영상은 20226월 현재 25십만이 넘는 조회를 기록하고 있다.

당시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원장으로 재직하던 필자는 즉시 사실확인에 착수했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 사학과 대학원에서 이승만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하던 David Fields 도움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미국 국가기록보존소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NARA) 의 기록인용장 (Record Citation Sheet) 을 구할 수 있었다.

기록그룹 (Record Group) 85-이민·귀화업무 (85-Immigration and Neutralization Service), 관할사무소 (Agency Office) 샌프란시스코 지역사무소 (San Francisco District Office), 기록 시리즈 (Record Series) 1884-1944 이민도착조사 사건파일 (Immigration Arrival Investigation Case Files, 1884-1944), 도착자료 카탈로그 (Archival Research Catalog: ARC) 분류번호 (Identifier) #296445, 파일 (File) 19470/9-7 이승만 (Syngman Rhee) 자료다. 20쪽 분량이다.

1930년 1월 하와이 팔로로 힐 (Palolo Hill) 자택 앞에서 ‘대한부인구제회’ (Korea Women’s Relief Society) 연차총회에 참석한 대표단과 함께 포즈를 취한 이승만 (55세) 사진 (출처: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민족문제연구소의 영상 ‘백년전쟁, 두 얼굴의 이승만’은 이 사진에서 이승만을 오려내서 다음과 같은 범죄인 사진으로 둔갑시켰다. 사진 아래쪽 사건번호 역시 조작이다.
1930년 1월 하와이 팔로로 힐 (Palolo Hill) 자택 앞에서 ‘대한부인구제회’ (Korea Women’s Relief Society) 연차총회에 참석한 대표단과 함께 포즈를 취한 이승만 (55세) 사진 (출처: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민족문제연구소의 영상 ‘백년전쟁, 두 얼굴의 이승만’은 이 사진에서 이승만을 오려내서 다음과 같은 범죄인 사진으로 둔갑시켰다. 사진 아래쪽 사건번호 역시 조작이다.

이 자료의 내용과 민족문제연구소 영상을 교차 확인하면서 필자는 엄청난 분노를 겪었다. 좌익들이 편파적으로 현대사를 왜곡하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이토록 교묘하고 집요하게 속이는 방법을 동원할지는 미처 몰랐다. 이승만에 대한 평가를 긍정 혹은 부정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악의적인 왜곡과 날조로 뒤덮여 있었다.

문서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기 전 우선 만 액트 (Mann Act)’ 는 무엇을 처벌하는 법인지 알아야 한다. 이 법은 불륜관계인 남녀가 주() 경계를 넘으면 처벌하는 법으로 당시 청교도적인 미국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법이었다.

민족문제연구소 영상엔 이승만 임시정부 대통령이 19206"자신을 숭배하는 스물두 살짜리 여대생 김노디와 여행을 하다가, 덜컥 미국 수사관들에게 잡혔다"는 대목이 나온다. 마치 이승만이 여대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사법당국에 체포된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범죄인 모습 사진도 곁들였다. 이승만이 기소를 당했다며 '기소 결정'이란 자막도 보여준다.

그러나 NARA 문서는 당시 이승만이 함께 독립운동을 하던 김노디와 같은 열차를 타고 시카고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이동한 사실을 두고, 구타펠 (M. L. Guthaphel) 이란 여성이 시카고 이민 당국에 밀고를 해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이민국을 통해 하와이 이민 당국에서 조사를 받은 사실이 있음을 확인해 준다. 동시에 조사결과는 우연히같은 열차를 탄 것으로 확인되어 '무혐의' 처리되었음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백년전쟁’ 영상은 두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이승만을 왜곡하는 ‘두 얼굴의 이승만’ (왼쪽)이고, 다른 하나는 박정희를 왜곡하는 ‘프레이저 보고서’ (오른쪽) 다.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발전시킨 두 대통령을 끊임없이 왜곡하고 폄하하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존재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민족문제연구소의 ‘백년전쟁’ 영상은 두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이승만을 왜곡하는 ‘두 얼굴의 이승만’ (왼쪽)이고, 다른 하나는 박정희를 왜곡하는 ‘프레이저 보고서’ (오른쪽) 다.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발전시킨 두 대통령을 끊임없이 왜곡하고 폄하하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존재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NARA 기록물 중 1920827일 하와이 호놀룰루 이민 당국 조사담당관 리차드 할시 (Richard Halsey) 가 샌프란시스코의 앤젤 아일랜드 (Angel Island) 에 있는 이민국장 앞으로 보내는 문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이 난다.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어떤 믿을 만한 근거도 찾을 수 없다." 이와 같은 결론을 뒷받침하는 조사 내용은 825일 문서에 포함된 조서에서 드러난다.

김노디: 제가 여기로(하와이로) 돌아오는 길에 박사님을 시카고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캘리포니아 행 기차를 우연히 같이 탔지만, 박사님은 새크라멘토 (Secramento) 에서 내렸고 저는 남자 형제를 만나러 캘리포니아 윌로우스 (Willows) 로 갔습니다.

수사관: 이승만 박사와 같은 침대 칸에 탔습니까?

김노디: 저도 위층 침상 그분도 위층 침상을 사용했지만, 칸은 서로 달랐습니다. 박사님의 아래층 침상을 썼던 여자의 이름과 주소가 저한테 있습니다. H. M. Gaudet 여사이고, 주소는 워싱턴 DC N.W. 1226-11 번지입니다.”

이 우연한 사건을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승만을 악마화하는 소재로 삼아 영상에서 왜곡과 날조를 서슴지 않았다. 다행히 인터넷 신문 뉴데일리가 2013316일 통렬한 반격 글 두 편을 실었다. 김효선 건국이념보급회 사무총장이 쓴 깡통진보, ‘백년전쟁이렇게 조작및 박성현 주필이 쓴 “‘백년전쟁의 흉측한 뽀샵 모략질에 숨은 비밀이다. 같은 날 조선일보 역시 류석춘 교수가 제기한 좌파 영상물 백년전쟁의 문제점도 실었다. 이에 더해 지금도 볼 수 있는 반박 영상 생명의 길: 인격살인은 국사가 아니다도 제작되어 2013426일부터 유튜브에 공개됐다.

‘특A급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을 ‘A급 민족반역자’로 만든 이미지.
‘특A급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을 ‘A급 민족반역자’로 만든 이미지.
독립운동의 선후배이자 동지인 이승만과 김노디 관계를 ‘불륜’으로 몰고 가는 이미지.
독립운동의 선후배이자 동지인 이승만과 김노디 관계를 ‘불륜’으로 몰고 가는 이미지.
플레이보이도 아니고 기소당한 사실도 없는 이승만을 왜곡한 이미지.
플레이보이도 아니고 기소당한 사실도 없는 이승만을 왜곡한 이미지.

이 문제와 관련해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할 대목이 하나 남아 있다. NARA 에서 구한 문서 중 시카고 이민국 해리 랜디스 (Harry Landis) 조사관이 샌프란시스코 이민국장 앞으로 보낸 192082일 문서에서 밀고자로 신분을 최대한 감추어 달라고 언급한 구타펠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홍선표 교수가 2012한국독립운동사연구(43) 에 발표한 논문 한국독립운동을 도운 미국인에 비교적 상세한 설명이 등장한다. 구타펠 (M. L. Gutapfel) 필라델피아 출신으로 1903년 미국 감리회 선교사로 내한하여 서울과 경기도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1912년 미국으로 돌아가 서재필이 설립한 필라델피아 한국통신부활동을 지원하면서 191910월부터 19204월까지 한국친우회시카고 지회에서 서기로 일한 사람이다 (p. 183, p. 197~8).

다른 한편,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이 2009년 펴낸 The Syngman Rhee Correspondence in English, 1904~1948, Vol. 5 에는 구타펠이 서재필 그리고 송헌주와 주고받은 편지가 6통 수록되어 있다 (p. 43, 53, 72, 86, 87, 90). 이 편지들은 모두 19203월부터 5월까지 구타펠이 일을 그만두면서 밀린 월급을 정산하는 문제에 관한 편지들이다.

필자의 결론은 이렇다. 시카고 한국친우회에 근무하던 구타펠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그즈음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직장을 잃은 지 한 달 만에 구타펠은 이승만과 김노디를 모함하는 밀고를 시카고 이민 당국에 했다. 젊고 똑똑한 한인 여성 김노디가 등장해 이승만을 돕는 사실이 노회한 한국통 미국인 여선교사 구타펠에게는 몹시도 못마땅한 일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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