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 카드 사용에 더 익숙...'돈 썼다'는 금전 감각 둔해져
돈 흐름 통해 재화·서비스 가치 생각할 수 있는 프로그램 인기

일본 초등학생들이 방과 후 귀가하는 모습. 21세기에도 여전히 현금 위주의 기성 세대와 달리, 전자 카드(교통카드, 편의점·문방구와 일부 음식점 결제 가능) 이용에 익숙하다. /픽사베이
일본에선 여전히 현금 위주로 일상이 돌아간다. 쇼핑 후 1엔(한화 약 10원)짜리 거스름을 챙겨야 하는 경우도 많다. 요즘 어린이들은 사정이 좀 다르다. 등교할 때 IC(직접회로) 교통카드를 이용하고 전자결제로 학용품을 구매한다. 그러나 일본의 어른들은 걱정이다. 거스름돈을 받을 기회가 적기 때문에 돈을 썼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워, 금전 감각이 둔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어린 학생들의 전자 교통카드 이용 모습이 일본에선 비교적 최근에야 펼쳐치고 있다. 이 교통카드로 대부분의 편의점과 일부 레스토랑 결제도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1996년 7월 1일 서울에 비접촉식 교통카드가 세계 최초 공식 도입됐다. 5년 지난 뒤에야 일본은 처음으로 교통카드를 받아들였으며, 아직도 사용 불가능한 노선이 존재한다. 일본의 ‘갈라파고스화’(자국 표준만 고집함으로써 세계시장에서 고립되는 현상)가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일본이 비로소 이를 극복하려는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다. 차세대에 대한 금융교육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때마침 일본의 민법상 성인 기준이 4월부터 만 18세로 낮아졌다. 1876년 관련법이 생긴 지 146년 만이다. 이제 만18세면 보호자없이 주식계좌 개설이 가능해졌다. 고등학교 교과서엔 주식투자나 펀드 등의 개념과 활용을 배우는 ‘자산형성’ 단위도 포함됐다. 현금을 직접 교환하던 구식 교육에서 벗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금에 대한 ‘돈 감각’을 키우기 위한 교육이 시작된 것이다.

특히 돈의 흐름을 통해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생각할 수 있는 금융 프로그램의 인기가 한창이라고 쿄도(共同)통신이 최근 전했다. 지난달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의 요코하마국립대학 부속 가마쿠라초등학교 5학년 반에서 관련 카드게임이 열렸다. 4~5명의 그룹으로 나눈 학생들에게 무작위 선택된 카드 중 ‘객체’와 ‘행동’ 중 더 가치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고르게 했다.

‘환자 간병 1시간’을 고른 아이는 돈보다 간병을 더 가치있게 여겼다. ‘연필’을 고른 아이의 경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데, 여러 사람이 쓰면 감염의 위험이 있어 연필을 먼저 확보했다"며 이유를 밝혔다. 담임 선생님 아라야 마이씨는 "돈을 매개로 사회와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려 다양한 것들의 가치를 발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카드게임은 미쓰비시UFJ모건스탠리증권에서 개발한 금융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4월부터 6개 현의 국·공립·사립 초등학교에서 도입했거나 도입을 결정했다.

일본 전역에서 4~10세 어린이에게 금융교육을 제공하는 ‘어린이 머니 스쿨(Kid‘s Money School)’은 작년부터 학교와 지방정부로부터 프로그램 문의가 급증했다. 도쿄의 간세이 가쿠인대학(關西學院大學) 경제학과 우에무라 쿄코 교수는 "금융교육이 옛날엔 여자에게 가계 관리를, 남자에겐 경제를 가르치기 위해서였지만 이젠 성별 구분이 무의미할 만큼 시대가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특히 "어른들이 아이들과 일상적으로 ‘돈 이야기’ 하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돈 감각’을 키우면 자립심도 일찍부터 성장한다. 일본 역시 자식을 늦게까지 부양하는 고령인구가 늘면서 이런 점이 더욱 절실해진 지 오래다.

80년대까지 제조업으로 세계를 제패하던 일본은 거품 붕괴 후 금융에 노이로제 반응을 보여왔다. 최근의 금융교육은 이제라도 다음 세대에게 도약의 기회를 주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은행 산하의 금융홍보중앙위원회가 그 중심이다. 전국에 홍보위원회를 두고 정기적으로 강좌·강연회·세미나 등을 개최한다. 우리나라 또한 21일 금년 첫 금융교육협의회를 개최하고 대면 금융교육을 재개하기로 했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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