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신
임명신

요즘 페미니즘은 젠더 이데올로기와 결합된 매우 급진적 이념이다. 더 이상 여권신장 양성평등을 추구하는 태도나 사상이 아니다. 사회학적 성별(젠더)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성별 자체를 부정한다. 심지어 ‘N젠더’가 등장했다, 기존 성소수자(LGBT, 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외에도 수많은 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때그때 달라요’ 수준의 다양한 성을 개인의 권리라 주장한다. 미국에선 서류 작성 시 성별 기입 항이 4개쯤 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거치며 ‘정치적 올바름(PC)주의’가 크게 힘을 얻은 결과다. 일부 주에선 미성년 자녀가 성전환 수술을 원할 때 반대하는 부모에게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다.

젠더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성별은 ‘권력의 편의’에 의한 것이며 본인 의지로 바꿀 수 있다. 성전환이 가능하고 그 결과가 법적으로 수용되는 세상이다. 젠더 이데올로기는 유일신이 ‘남자 여자를 지으셨다’는 전제를 절대 권력의 출현과 같은 맥락에서 본다. 생리학적으로 암수는 유동적일 수 있는데 무리하게 구별 짓고 남성 중심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전 세계 약 30 개국에서 동성결혼이 허용되고 미국은 일부 주에서 가능하다. 결혼·가정에 대한 근본 질문을 던진다. 임신·출산의 바탕이 될 남녀의 법적 결합인 결혼·가정이 과연 개인에 대한 억압일 뿐이며 해체돼야 할 제도일까? 게다가 여권이 밀어붙이는 차별금지법은 이 변화에 반대의사를 표하는 자를 처벌하려 한다.

인종·성별·출신·직업 등으로 인한 차별이 준 것은 많은 사람의 노고와 희생 덕이다. 100 여년 전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고등교육 기회와 참정권을 위해 시위로서의 자살을 감행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역시 1세대 여권 운동가들의 노고가 값지다. 21세기 K-페미는 역사의 혜택을 누릴 뿐인가? 어디를 향하려 하나?

살다 보니 남성 역차별이 문제시되는 시대가 됐다. 우위를 누려본 적 없는 20대 남성들은 과거 세대의 책임을 짊어진 듯한 현실에 심한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그것을 알아주면 또래 여성들이 또 반발할 것이다. 이 문제를 선거 공학적으로만 바라봐선 안 되며, 조화로운 양성평등을 위해 보다 합리적인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여성가족부와 관련 시민단체의 밀착, 카르텔화 한 여성계, 이들이 페미 열풍의 공범 내지 방조자라는 사실도 더 알려져야 한다.

인구와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늘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남성성·여성성의 구분과 남성 우위는 사피엔스가 만물의 영장이 된 비결의 하나다. 다만 이제 남성의 역할은 옛날 같지 않고, 여성의 가능성을 잘 키워내는 사회일수록 경쟁력이 있다. 물론 여성할당제가 처음의 취지만큼 여전히 유효한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페미니즘이 분화하고 있다. 남성우월주의가 싫을 뿐인 페미니스트까지 위험시할 것은 없다. 위안부운동으로 재미를 본 민족해방파(NL) 페미에 대해선 팩트를 분명히 밝히고, 그들이 길들여온 사람들을 구출해내야 한다. 저항해야 할 것은 N젠더다. N젠더는 나름의 과학적 논리를 가지지만, 그로 인한 동성애의 만연과 가족해체의 가속화가 도무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 같지 않다.

망명 시절 하와이 교포사회에 여학교를 세웠던 이승만은 고전적 페미니스트였다. 고전 페미에 속할 인사들을 ‘수구’ 취급하는 게 ‘야만’이면, 페미라고 다 ‘요즘 페미’인 줄 아는 쪽은 무지하다. 여야 선대위원장 여성인사 영입 진통을 보며 들었던 생각이다. 한편 유권자들은 공직 후보자를 ‘살아온 과정’으로 파악하는 수밖에 없다. 사생활도 사생활 나름이다. 여성이라고 섣불리 동정을 표하는 것 또한 자중해야 한다. 관련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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