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법

 

떠나고 싶은 자 /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 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강은교(1945~ )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사랑하는 행위에도 방법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구속하지 말고 자유롭게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사랑법’은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청춘들에게 들려주는 덕담으로 읽힐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자신을 향한 묵언(默言)과 묵계(默契)에 가깝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유롭게 만들어 준 다음 ‘꽃과 하늘과 무덤’, 즉 아름다움과 이상과 죽음을 상념해야 한다. 그것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동시에 타인을 사랑하는 법이다. 이렇듯 크게 뜬 눈이 아닌 가느다란 ‘실눈’으로 상대를 관조하면 언제나 있었지만 여태껏 보이지 않던 ‘그대 등 뒤에 있는 가장 큰 하늘’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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