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나베 미카
와타나베 미카

일본 장마는 길다.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 매일같이 비가 계속된다. 빗소리를 들으면 어릴 때 기억이 떠오른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길가에 비를 맞은 냉이꽃이 반짝반짝 빛나 너무 예뻐서 잠시 넋을 잃고 보고 있었다. 그대로 가지고 가고 싶었지만, 따버리면 물방울의 보석도 사라질 것 같아서 그냥 두기로 했다. 웅덩이를 지나가는 것도 재밌어서 일부러 철퍼덕철퍼덕 걷다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먼 추억이다.

‘테루테루보즈(てるてる坊主)’를 만들었던 것도 장마철이면 생각난다. 아이들이 소풍이나 운동회 전날에 종이로 인형을 만들어 처마 끝에 걸어놓고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원한다. ‘테루테루보즈’의 유래는 중국의 ‘소창낭(掃晴娘)’전설이라고 한다. 한 마을이 큰비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때 소녀 소청낭이 하늘에 기도를 했더니, 용왕이 비를 멈추게 해주는 대신 소녀를 데리고 갔다는 설화다. 소녀의 희생이 마을을 구했다는 슬픈 이야기지만, 일본에 전해진 후 불교 관습과 합해져서 생활풍습만 남아있다.

‘테루테루보즈’ 동요도 있는데 그 가사가 예사롭지 않다. ‘테루테루보즈 테르보즈 내일 날씨가 맑게 해다오. (1절)언젠가 꿈속에 하늘처럼 날이 개면 금방울을 줄게. (2절)내 소원을 들었다면 달달한 술을 마시게 해줄게. (3절)만약 날씨가 흐려서 비가 온다면 네 목을 싹둑 하고 자를 테다.’

날이 들기를 기원하여 추녀 끝에 매달아 두는 종이로 만든 인형 '테루테루보즈(てるてるぼうず)'.
날이 들기를 기원하여 추녀 끝에 매달아 두는 종이로 만든 인형 '테루테루보즈(てるてるぼうず)'.

일본 동요는 종종 무서운 문구가 등장한다. ‘테루테루보즈’도 고대부터 존재했던 ‘인신공양(人身供養)’의식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 ‘심청전(沈淸傳)’도 인신공양 설화의 영향을 받은 소설이다. 하지만 ‘심청전’은 고도로 승화된 효사상으로 민속신앙과 주술적 풍습의 틀을 넘어선 명작으로 사랑받고 있다. ‘심청전’과 연관되어 생각나는 것이 영화 ’서편제‘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헤어진 남매가 재회해 판소리 ’심청가‘를 부르는 장면이다.

아버지는 최고의 소리만을 추구하는 고고한 소리꾼이었다. 양딸에게 최고의 소리를 찾아주기 위해 시력을 없애 버릴 정도로 소리에 미친 인물이다. 아들은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생활을 벗어나려고 도망가버린다. 한참 후에 어느 마을에 소리만 하는 눈먼 여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다. 판소리 ’심청가‘를 부르며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북소리로 동생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국 각자 갈 길을 간다.

한국 예술의 다이너미즘은 "인간이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끝없이 도전하는 근원적인 힘을 간직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 힘이 고대부터 이어져 온 풍습마저 사상의 영역까지 끌어올렸다. 나는 다른 곳에서 그러한 다이너미즘을 느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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