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이 만난 사람] '한산, 용의 출현' 김한민 감독

시간을 거슬러 '명량' '한산' '노량'의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 진행
7년간 치밀한 조사로 파고 또 파고들며 스토리텔링 다지고 다져
"이순신은 환한 세상,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홍익의 세상' 꿈꿔"

‘한산: 용의 출현’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 그의 이순신 3부작(명량·한산·노량) 가운데 두 번째인 이 작품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연합
‘한산: 용의 출현’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 그의 이순신 3부작(명량·한산·노량) 가운데 두 번째인 이 작품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연합

"‘명량’에 이은 ‘한산’, 피날레의 ‘노량’으로 이순신 열풍이 한반도를 넘어 온 세계를 흔들었으면 합니다."

2014년 개봉해 관객 1761만명을 동원,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영화 ‘명량’. 이 영화로 명장(名匠) 반열에 오른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중 첫편이었다. 김 감독의 ‘한산’이 7월 27일 개봉된다. 그는 왜 시간을 거슬러 역순(逆順)으로 간 것일까?

"애초 명량을 기획하면서 고3 때 입시공부하듯 7년 전쟁, 임진왜란을 파고 또 팠습니다." 사전 조사를 오래 하다보니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명량보다 5년 앞선 임진란 초기의 ‘한산대첩’도 눈에 들어온 것이다. 한산대첩은 행주대첩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란 3대 대첩으로 우뚝하다. 이순신을 필두로 이억기·원균이 가세해 왜군과 격돌했다. 조선 수군의 사상자는 단 13명(전사 3명, 부상 10명), 왜국 전함 47척을 격침시킨 세계 해전사에 빛날 전투의 하나였다.

‘명량’의 흥행, 공전의 빅히트는 ‘김한민의 꿈’에 불을 지폈다. ‘이순신 열풍’을 부르고 싶다···. ‘한산: 용의 출현’과 ‘노량: 죽음의 바다’를 거의 동시 크랭크인에 들어갔다. 7년 간 치밀한 조사로 파고 또 파며, 스토리 텔링(敍事)을 다지고 또 다졌다. 그렇게, 역사적 실존 인물을 다룬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가 첫 걸음을 뗄 수 있었다. 최민식이 이순신을 맡은 ‘명량’을 시작으로, 박해일의 이순신 ‘한산: 용의 출현’, 김윤석의 이순신 ‘노량: 죽음의 바다’로, 이 프로젝트는 완성될 것이다.

"명량에 최민식을, 한산에 박해일을, 김윤석을 노량에 각각 투입할 생각을 처음부터 한 것은 아니지만, 5살이나 젊은 순신에는 박해일, 노량에서 죽음을 각오한 순신에는 김윤석이 결과적으로 잘 맞은 것 같습니다." 온 국민의 영웅인 실존 인물을 그려 내야 한다. 이 지난한 작업은 우리 영화 사상 최초의 시도다.

김한민 감독(왼쪽)과 배우 박해일이 28일 열린 '한산: 용의 출현' 제작보고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김한민 감독(왼쪽)과 배우 박해일이 28일 열린 '한산: 용의 출현' 제작보고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김한민은 평소 예민한 편이다. 영화 匠人의 단순한 재주 차원을 넘어 선, 얼핏 내면의 영성(靈性)이 느껴진다. 8년 전, 공전의 흥행으로 주가가 높던 시절, 김 감독은 인터뷰에서 묘한 말을 했다. 명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뭔가? 질문에 답할 때였다.

"이순신이 어머니 위패에 절할 때 보이는 현판을 주목해 보시라. 거기 숨겨진 뭔가가 있어요." 이순신이 출정(出征)하기 전 모친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장면이 ‘명량’에 나온다. 2~3초 쯤 될까, 스치듯 현판을 보여주고 지나간다. 영화를 집중해 보더라도, 미리 의식하며 꼼꼼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포착하기 불가능할 정도다. 김 감독은 ‘弘益人間’(홍익인간)과 ‘桓’(박달나무 환, 밝음을 뜻함)을 현판 양쪽에 각각 배치했다.

"피할 수 없는 전쟁이기에, 백성과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쟁을 치루고 적을 죽여야 하는,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죠." 이순신은 영화에서 전투가 끝날 때마다 ‘이 원한을 어찌할꼬···’ 하며 안타까워 한다. "환한 세상, 즉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홍익의 세상’을 이순신이 꿈꿨다고 봅니다. 그러나 도탄에 빠진 백성을 위해, 나라를 구하기 위해, 그 상극의 장에서 기필코 적을 죽이고 이겨야만 했던 장군의 짙은 고뇌가 피부에 와 닿았습니다."

‘전쟁의 신’(戰神)으로 통한 이순신이었다. 그의 22전 22 연승은 세계 해전사에서 깨지기 어려운 기록이다. 표면적으론 전승 가도를 달리는 이순신을 비추는 것 같지만, 김 감독이 다른 앵글로 그리려 하는 것은 멍에처럼 짊어진 이순신의 운명과 고뇌다.

"태어나 자란 순천군 해룡면이 정유재란의 격전지였지요. 그래서 이순신에게, 7년전쟁으로 불리는 임진왜란에 꽂혔을 겁니다. 고뇌하는 영웅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게 된 거지요." 그런 것을 고민하며 들여다 볼 줄 아는 것, 표현해 내는 것, 모두 김 감독의 名匠 된 자질이자 지금까지의 성취다.

"세상은 전쟁의 역사지만, 궁극에는 ‘홍익인간·재세이화(在世理化)’, 즉 평화롭고 환한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김 감독의 세계관·가치관·역사관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렇기에, 출정에 앞서 제사 지낼 때 현판에 ‘비의(秘義)가 담겨 있다’고 말한 것이다.

김한민 감독. /연합
김한민 감독. /연합

"우리 역사는 단순한 역사가 아닙니다. 홍익인간의 신념 아래 탄생한 나라, 고조선 이래 고려·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완성을 지향하는 남다른 정신을 가졌어요. 그 정신의 요체가 이순신 아니었나 싶습니다." 영웅을 넘어 선 ‘성웅(聖雄) 이순신’을 기리는 3부작을 기획해낸 그의 한줄기 단심(丹心)이라 여겨진다.

제작비가 엄청난 전쟁 액션 대작 2편을 동시 촬영한다는 발상이 놀랍다. 제작비를 최대한 줄이려는 ‘동시 촬영’ 아이디어, 그것을 실현해 낸 준비력과 뚝심이 대단하다. 당초 2021년 여름 개봉을 계획하며 런칭 포스트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잠잠해질 시기, 엔데믹 상태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야 했다. 그래서 1년을 더 기다린 김 감독이 지쳐갈 무렵, 마침내 때가 온 것이다.

얼마전, 그와 막역한 황태연 동국대 교수와 지인 몇명이 동석한 자리에서 김 감독을 만났다. 누군가 ‘최후병기, 활’에서 "류승룡이 만주어를 어쩜 그리 능숙하게 잘 하느냐?"고 물었다. 김 감독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 핵심 주제와 연결된 것들을 편집증적으로 파고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방면에 공부를 많이 하게 돼 박람강기(博覽强記)를 자랑한다. 한자표기 愛新覺羅(애신각라)를 만주어 ‘아이신기오로’로 발음하는 눈이 반짝였다. 그 정도로 치밀하게 고증·탐구를 하기에 탄탄한 완성도의 영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배우들이 연기에 더욱 몰입하도록, 한계까지 몰아가는 그의 리더십도 여기서 연유하리라 본다. 영화감독이 그런 내공을 지니려면 직관과 상상력, 그 위에 리더십까지 갖춰야 한다.

김 감독이 내세운 ‘한산: 용의 출현’이 2000만을 뜻하는 ‘TM(Twenty Millions)’을 달성할 것으로 믿는다. ‘명량’으로 1800만 대기록을 한번 세워본 터라, 이제 ‘넘사벽 2000만’을 깨고 싶어하는 눈치다. 관객수에 관심이 없을 수 없겠지만, 그러나 그가 더 원하는 것은 따로 있는 듯하다. ‘이순신 열풍이 불었으면 좋겠다···.’ 그 ‘이순신 열풍’이 코로나19로 위축된 ‘K-무비’가 재도약할 밑거름도 되길 축원하는 마음이다.

'한산, 용의 출현' 제작보고회. /연합
'한산, 용의 출현' 제작보고회. /연합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