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문
조희문

윤석열 정부의 문화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역대 정부에서 있었던 문화비서관 자리는 정부 개편 과정에서 없어졌다. 문화부(문화체육관광부)는 정책보다는 행정에 힘을 쏟는다.

며칠 전 윤석열대통령이 영화 ‘브로커’를 관람하고 나서 용산 대통령실로 칸느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헤어질 결심’의 감독 박찬욱, 함께 출연한 배우 박해일, ‘브로커’의 주연배우 송강호와 제작사인 영화사 집의 이유진 대표, 비경쟁부문인 미드나잇 스크린에 초청된 ‘헌트’(이정재 감독.주연)에서 주연한 정우성, 제작사인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를 비롯하여 영화계 원로들을 불러 만찬을 했다. 이보다 앞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느 영화제 대상을 받고 미국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작품상을 비롯하여 4개 부문을 수상을 할 수 있었던 데다 이번 칸느 영화제에서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의 수상에 지대한 공헌을 한 CJ(CJ E&M)는 영화인을 칭찬하는 자리에 초대받지 못했다. 창작만 중요하고 제작, 유통 등은 돈만 챙기는 사업자라는 인식을 여전히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겠다’는 말을 다짐하듯 했다. 대통령의 이 말은 윤석열 정부의 문화정책 방향을 밝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이 새 정부의 문화정책은 ‘없다’는 말로 들린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의 역사는 문화 정책의 기본 원리처럼 통한다. 영국에서 시작된 이 정책은 문화행정의 절대 원칙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이 원칙을 따르고 있다.

겉으로는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화 예술은 기본적으로 수익성을 따지지 않는 분야로 인식되기 때문에 공공적 차원에서 지원하고 보호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정부를 비롯하여 각 분야의 공공기관들이 지원에 나서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문화 예술이 정치적 정파성을 띠지 않는 순수 창작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충족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지난 1980년대 이후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스며든 이념문제는 우리 사회를 극단적으로 갈라놓았다. 민주화는 무조건 선이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비판하면 부패한 기득권, 권위적인 독재세력의 잔당 쯤으로 몰아 세웠다. 시위 행사장에는 노래패가 등장했고 사실을 왜곡하는 영화들이 다투어 나왔다.

정치 권력은 물론이고 교육계, 노동계, 언론계, 종교계 등은 물론이고 중심을 지켜야 할 법조계와 군·경까지 우리 사회 각 분야를 좌파 세력이 장악하거나 눈치를 보면서 몸을 사리는 지경이 되었다. 치열한 좌파의 진지화와 무방비 상태로 방치한 우파의 무개념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문화 예술 분야의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정책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권에서는 좌파성향의 문화예술인들이 ‘내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명분이 되었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좌파들이 정권을 공격하는 수단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는 사이 문화 예술계는 좌파들의 해방구가 되다시피 하여 온갖 정치적 선동과 왜곡이 난무했다. 좌파 정권에서는 정권을 찬양하거나 홍보하는 영화, 연극, 미술전, 음악회 등이 간단없이 나타났고 우파 정부에서는 정권을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작품들이 이어졌다. 우리의 국군이나 경찰, 미군은 양민을 학살하고 짓밟는 원흉처럼 묘사하거나 독재권력의 앞잡이로 묘사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교사나 공무원들은 학생들의 인권을 짓밟고 선량한 시민위에 군림하는 집단으로 묘사됐다.

일부 작품에 대해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각종 관련법 규정에 위반 될 수 있다는 지적을 하면 문화예술에 대해 턱없는 검열을 하겠다는 것인가 라며 논쟁화시켰다. 그러는 것이 좌파의 전략인 줄 모르는 우파들은 오히려 눈치를 보며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시끄럽지 않기만을 바랐다. 미술전이나 음악회에 가고 책 몇권 읽는 것이 문화 예술의 전부라고 믿는 경우도 많았다.

문화예술을 우리사회의 이념화 수단으로 삼고 있는 좌파들이 장악하고 있는 기울어진 지형에서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겠다’는 선언은 지금의 좌파 문화 예술인들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우파 예술인들에게는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원의 균형을 바로 잡아야하고, 지원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도 엄격하게 살펴야 한다.자율이라는 명분을 뒤집어 쓴 채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좌파 문화 예술이 방치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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