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나는 새장을 하나 샀다.
그것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날뛰는 내 발을 집어넣기 위해 만든 작은 감옥이었던 것.

처음 그것은 발에 너무 컸다.
한동안 덜그럭거리는 감옥을 끌고 다녀야 했으니
감옥은 작아져야 한다.
새가 날 때 구두를 감추듯.

새장에 모자나 구름을 집어넣어 본다.
그러나 그들은 언덕을 잊고 보리 이랑을 세지 않으며 날지 않는다.
새장에는 조그만 먹이통과 구멍이 있다.
그것이 새장을 아름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새 구두를 샀다.
그것은 구름 위에 올려져 있다.
내 구두는 아직 물에 젖지 않은 한 척의 배.

한때는 속박이었고 또 한때는 제멋대로였던 삶의 한켠에서
나는 가끔씩 늙고 고집 센 내 발을 위로하는 것이다.
오래 쓰다 버린 낡은 목욕통 같은 구두를 벗고

새의 육체 속에 발을 집어넣어 보는 것이다.

송찬호(1959~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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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시문학(詩文學)의 언어가 고도의 비유와 상징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구두’는 삶 그 자체다. 언뜻 보기에 요령부득인 이런 비유는 시문학이기에 기꺼이 해설되고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 작품의 키워드는 4연이다. ‘나는 오늘 새 구두를 샀고 그것은 구름 위에 올려져 있으며 아직 물에 젖지 않은 한 척의 배’라는 것. 그러니까 헌 구두는 과거의 속박된 삶이었던 반면 새 구두는 ‘언덕을 생각하고 보리 이랑을 헤아리며’ 새장을 벗어나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로운 삶이다. ‘아직 물에 젖지 않은 한 척의 배’처럼 자유로이 항해할 수도 있다.

이처럼 구두와 새장은 너나 할 것 없이 구속된 삶을 사는 현대인을 상징하고 있다. 발이 구두에 속박되고 새장에 새가 갇히듯 현대인들은 결코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삶을 자각한 시인은 마침내 반기를 든다. ‘새 구두’를 장만했다는 것. 그리고 그 구두를 ‘구름 위에 올려’놓았다는 것. 나아가 ‘새의 육체 속에 발을 집어넣어본다’는 것. 새의 육체 속에 발을 집어넣어본다는 것은 껍데기가 아니라 살(肉)까지, 한시적(限時的)이 아닌 영원한 자유의 갈망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작품은 ‘구두’를 통해 현실에 얽매여 사는 한편 자유의 비상을 꿈꾸는 현대인의 초상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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