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첫날 조 바이든 대통령은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1776 위원회’를 폐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Getty Images
4일은 미국의 246주년 독립기념일이다. 건국기념일이기도 하다. 1776년 이날, 천부인권이 담긴 위대한 독립선언서가 발표됐다. ‘독립기념일’은 현충일에 해당하는 ‘메모리얼 데이’(5월 마지막 월요일)와 함께 가장 중요한 연방 공휴일이자, 미국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날이다.
 
인류 최초의 근대적 공화국의 출발, 그리고 그것이 지향하는 가치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을 기리는 게 이 두 공휴일이다. 새로운 주(州)가 연방 가입을 하고 맞는 첫 독립기념일엔 ‘별의 개수’를 늘려 국기(星條旗)를 수정한다.
 
그러나 지나 20~30년간 이 날의 의미는 꾸준히 퇴색해 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이래 가시화된 ‘캔슬 컬쳐(cancel culture)’ 흐름 속에 더욱 뚜렷해졌다. 이 ‘미국판 적폐 청산-역사바로세우기’의 결정판이 바로 2019년 뉴욕타임즈(NYT)의 ‘1619 프로젝트’다. 여기선 흑인노예들이 도착한 1619년을 미국의 시작으로 본다.
 
흑인을 중심에 놓고 재구성된 역사에서, 백인 남성 주도의 과거사는 그저 ‘악’이다.이에 맞서 나온 게 ‘1776 위원회’였다. 2020년 9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젊은 미국인들이 자기나라를 오직 인종차별 만연한 국가로 너무 오래 동안 세뇌당했다"며 건국정신을 부각시키는 ‘애국교육’를 주창했다.
 
그러나 ‘1776 위원회’는 4개월 후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첫날 폐지 결정이 내려졌고, 백악관 웹사이트의 해당 페이지도 즉각 삭제됐다. ‘1776 위원회’를 출범시킬 때 트럼프 대통령은 호소했다. "피부색 아닌 인격으로 평가받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전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좌파가 이 아름다운 비전을 파괴하고 미국인들을 인종에 따라 분열시키려 한다. 내버려 둘 수 없다."
 
또한 "이런 시각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아동학대의 일종"이라며, "미국의 위대한 역사 진실을 다루는 커리큘럼의 추진"을 약속했다. 흑인 인권운동과 노예제 역사를 다룬 NYT의 탐사보도 ‘1619 프로젝트’에 퓰리처상이 수여됐으나, 그 편향성을 트럼프 전 대통령은 거듭 지적해왔다.
 
"미국의 인종차별 역사를 지우려는 시도"라는 게 바이든 대통령의 ‘1776 위원회 폐지’ 명분이었다. 심지어 프로젝트의 필자 중 한 명인 니콜 한나 존스 기자에 따르면, "미국의 독립혁명은 노예제도를 보존하기 위해서 일어났다." 역사학계와 시민사회의 비판과 논란 가운데 ‘1619 프로젝트’를 일부 학교들이 이미 교육 프로그램으로 채택한 상태다.
 
‘1776 위원회’는 2020년 1월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틀 전 공식 보고서를 내고 "미국의 건국정신을 왜곡할 정치운동의 위험성" "반미와 검열의 온상이 된 미국 대학들"의 현실을 우려했다. 보고서는 "미래의 미국 시민들에게 건국 원칙에 기반한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하며, "애국교육이란 미국역사의 결점을 감추는 게 아니라 정정당당한 태도로 나라를 사랑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역사학자 하워드 진과 NYT 존스 기자 등의 역사관이 자괴와 혐오를 심을 뿐, 역사의 우여곡절 속에서 피워낸 인간성과 선량함을 철저히 외면한다"는 점도 지적됐다. 미국에서 유행해 온 이른바 역사수정주의에 대해 보고서는 "정직한 학문과 역사의 진실을 짓밟으며 선조들의 약점만 강조한다", "일종의 이데올로기"라고 평했다. 토론 가능한 견해가 아니라 완강한 정치적 신념이라는 뜻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첫날, 전임 정부의 정책 17건을 뒤집었다. 연방 수준의 ‘나라 되찾기’(애국교육) 운동은 좌절됐으나, 州 차원에서 ‘학부모 교육권’ 강화를 통한 저항이 시작됐다. 극단적 역사관과 동성애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가르치는 ‘비판적 인종이론’ ‘성(젠더)교육’ 등을 학교 교과과정에 넣지 못하도록 소송과 입법이 이어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날 백악관 웹사이트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애국 교육을 위해 설치한 ‘1776 위원회’ 페이지를 삭제했다. /백악관 홈페이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날 백악관 웹사이트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애국 교육을 위해 설치한 ‘1776 위원회’ 페이지를 삭제했다. /백악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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